[시론/서해성] 세월호는 어디에 침몰했는가

“세월호, 안전도 정의도 서 있기 힘든 세상에 침몰”

세월호는 어디에 침몰했는가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사회적 믿음’의 침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은 꺼졌다. 작은 섬 크기의 커다란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았다. 수학여행길에 나선 고등학생들이 배에서 아침밥을 막 먹은 직후였다. 고작 인생의 오전 앞부분을 살고 있는 이들이 그 하늘과 땅 사이 물결 저편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하늘과 땅이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사회적 믿음을 뜻한다. 그리고 울부짖는 비명이 남았다.

“세월아, 아이들을 돌려다오. 벗들아 미안하다”

세월호의 조난과 함께 오늘 우리는 모두 조난 중이다. ‘엄마, 내가 말 못 할까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 문자 메시지가 캄캄한 파도 위를 떠다니면서 엄마를 부르는 이 밤, 세월호여, 너는 무엇을 찾아 그 검은 바다에 자맥질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을 돌려다오! 어찌하여 이름이 세월호인지, 세월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 삶으로 알 리 없는 학생들을 세월호는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어린 벗들은 어이하여 이 밤바다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는 하루여, 세상이여. 조사는커녕 위로조차 건넬 수 없는 벗들아. 미안하구나.

안전과 재난관리 ‘세월호’와 함께 침몰

이것은 국민 저마다의 가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절박한 외마디다. 구체적인 연유가 장차 밝혀지겠지만 생목숨을 바다에 수장시킨 일은 그 자체로 문명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늘이 무너지랴 땅이 꺼지랴 걱정하는 건 극단적 위험사회이자 문명을 관리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징벌이면서 또 문명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야만이다. 그리하여 세계 10위 권 부자나라, IT강국 한국사회의 안전과 재난관리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한국은 지금 19세기나 20세기 초반도 아니고 세월호에는 난민이 탄 것도 아니었다. 그 세월호는 어디서 출항하였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사회적 의미에서 어디에 침몰해 있는가. 수요일 아침을 강타한 세월호 사건은 조난뿐 아니라 정부의 재난관리 수준에서 또 다른 재난적 충격을 주었다.

‘오락가락’ 정부 발표.. 초등학생 수준도 못미쳐

사고 당일 한때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 338명 전원이 구조된 양 보도되어 학교에서는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후에도 중앙재난대책본부는 368명을 구출하였다고 발표했다. 진짜였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아침 9시 못 미쳐 사고가 난 뒤 하물며 밤이 되도록 승선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 몇 명을 구출했는지조차 정부는 분명하게 확인해주지 못했다. 그저 생존자 이름을 장부에 잘 기록하기만 했어도 이런 혼란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모둠에서도 일상적으로 하는 수준이다.

허점투성이 ‘조난정부’.. “무능력 극한 드러내”

또 해군, 육군 등 군인과 해경, 민간인 배, 뉴스로 듣기에 미군 군함까지 참여하여 다양한 지원이 있는 듯하지만 이는 다른 한편 현장지휘체계가 부재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초급 이하의 재난관리는 국가위기관리의 첫 번째 책무인 국민 생명을 과연 지켜낼 수 있는지 의문이 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위기에 대해 이토록 치명적인 허점투성이인 ‘조난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조난 이후 세월호에 대한 대응에서 정부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조난당한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라 재난상황 대응과 처리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의 극한을 보여주고 있는 정부다. 그리하여 울고 있는 국민의 심정까지가 함께 조난 중이다.

정부 보다 앞선 ‘어선’ 구조위해 사투 벌인 ‘시민’

다들 알다시피 조난 신고를 한 것은 배에 탄 학생의 부모였고, 사고현장에 먼저 도착한 것도 어선이었다. 정부기관보다도, 배를 책임진 선장과 선원들보다도 용기 있는 행동은 건축 배관설비사로 취업해 제주도로 첫 출근을 하러 가던 김홍경 시민이 보여주었다.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며 20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그가 한 말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었다. 이것이 국민이 기대하는 국가의 존재이유여야 하고, 군인, 경찰, 또 정치인을 포함한 권력에 걸 수 있는 상이라야 한다.

“세월호, 안전도 정의도 서 있기 힘든 세상에 침몰”

이런 헌신성에 기초한 권력과 지도자만이 안전의 침몰을 사전에 막고, 또 위기상황에서 지혜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커다란 재난이 생기면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사회와 국가는 그 자체로 미숙한 문명사회이자 조난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세상에서는 안전도, 사회정의도 서 있기가 힘들다. 세월호는 거기에 침몰한 것이다.

19세기형 ‘대형참사’ 재연.. 문명의 치욕

미국 미시시피강에서 술타나호가 폭발하여 1,547명이 사라진 건 1865년이었다. 유명한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면서 1,517명이 사망한 건 1912년이었다. 벌써 1백년도 더 된 일이다. 이는 안전과 구조 개념이 오늘날에 비길 수 없이 낮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문명의 치욕임은 말할 나위 없다.

허점 드러낸 재난관리 수준.. 또 다른 재난

2002년 훼리선 줄라호가 감비야 해에 침몰하여 1,863명이 수장된 것은 정원을 4배 가까이 초과해서 2천여 명이 승선한 때문이었다. 작년 가을 이탈리아 남단 람페두사섬 해역에서 아프리카 난민 500명을 태운 바지선이 화재로 가라앉으면서 35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이들은 사실상 난민이 탄 배들이었다.

‣ 4.17 <데일리 고발뉴스> 서해성의 3분직설 (08초~)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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