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해성] 말의 사망

“침묵하는 지식인, 너희는 말의 시체를 떠도는 유령”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말의 사망

말은 죽었다.. 진실이 거처할 자리 없어
말이 죽어가고 있다. 말도 생명이 있어 생로병사가 있다. 오늘 그 말들이 중병에 걸렸거나 말로써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고 있다. 거리에서, 안방에서, TV와 신문에서 말이 앓고 있다. 말이 죽어버린 사회에서는 진실이 거처할 자리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말이 혼수상태에 빠진 건 이미 오래되었다. 이를 넘어 왜곡, 능멸, 저격으로 말이 사망해가고 있다.

     
 

언론은 절명하고 권력의 혀로 전락
말이 공적으로 유통되는 언론은 안팎으로 절명한 지 오래다. 미디어는 공론기관이 아니라 한낱 권력과 자본의 선전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 TV의 경우 보도와 교양은 물론 예능이라 부르는 통속영역까지 권력의 혀가 되어가고 있다. 일방의 주장만이 군림하는 곳에서 말은 제 넋을 잃는다. 영혼이 없는 말은 이미 정상적인 말이 아니다.

‘말이 가장 아플때 사회도 가장 아파’
말이 가장 아플 때가 바로 사회가 가장 아픈 때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광주학살을 저지르고서도 자신들을 민주와 정의로 분식했다. 그들이 만든 정당이 민주정의당이었다. 역사상 가장 반민주, 반정의를 이와 같이 전도시킨 것이다. 말의 역사로만 보자면 민주화운동은 그 말의 진실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대중적 과업이기도 했다. 박정희 권력은 당연히 그 선배였다. 한국적 민주주의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일인 민주주의, 곧 장기독재를 그에 걸맞게 길게 늘여서 부른 말이었다.

‘정의 담지 못하는 말은 시대의 폭력에 불과’
한국적 민주주의에는 민주주의가 없었다. 다들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시피 지난 MB정권은 명백한 생명파괴를 4대강 살리기라고 서슴없이 자랑 삼았다. 다수의 토건자본은 거기에 빌붙어 동행했다. 정의의 거처가 되지 못할 때 이처럼 말은 시대와 대중에게 폭력으로 나타난다.

부끄러움을 잊은 권력과 자본.. 무력한 언론
사회비판자로써 말은 그 상대인 권력과 자본의 부끄러움을 전제로 존재하고 가치가 성립한다. 언론이 존재 의의를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겨우 비판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몇몇 신문과 팟캐스트 같은 소수언론이 제아무리 비판을 가해도 죄의식이나 수오지심이 없다면 말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대답도, 메아리도 없는 말은 실종된 말이다. 이는 압사되는 말과는 또 다른 말의 비참한 경지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말의 사망과 실종은 그 사회에서 결국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게 한다는 데 있다.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맹자의 이 말(수오지심)은 오늘 한국 언어사회에 비극적으로 들어맞는 말이다.

말이 사망하면 대중의 진실도 죽어.. 타락한 시대
말이 죽은 곳에는 권력 일방의 군림만이 아니라 대중의 진실이 사망한다. 오늘 이 말의 사망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건 권력과 그에 부응한 언론이다. 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작 말의 정의로움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이미 썩은 말일 뿐이다. 부패한 말이 언론단체가 주는 상을 거듭 받고 있는 일은 말의 역사에 추악한 오점으로 등재되고 있다. 타락한 말은 타락한 시대를 낳는다. 이 말마저 이미 부끄러움이 아닌 사회라면 말은 갈 길을 잃는다.

“침묵하는 지식인, 너희는 말의 시체를 떠도는 유령”
시야말로 말의 극미이고, 광장의 외침은 대중의 시다. 이보다 더 생명력 넘치는 말은 없다. 민주사회에서 말의 참된 가치는 대중의 이름으로 광장을 통해 획득해왔다. 그 광장의 언어가 말을 새롭게 탄생시키리라. 말의 정의를 빼앗긴 시대는 말이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것이 말의 힘이자 운명이다. 말이 대중 사이에서 태어나고 죽는, 말이 자연사하는 시대는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가장 행복한 말은 공론장에서 제 몫을 다하는 말이다. 말로 먹고살 뿐 말의 사망에 대해 침묵하는 지식인들은 말의 시체 사이를 떠도는 유령들일 뿐이다.

‣ 3.27 <데일리 고발뉴스> 서해성의 3분직설 (10분 28초~)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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