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 봄 안온다.. “노예의 시간 뿌리쳐야”
봄은 어디서 오는가
지난주는 설이었다. 일제는 음력과 양력으로 나뉜 설을 이중과세라고 해서 민족명절인 전통 설을 쇠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국인이 시간의 주체로 사는 걸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 또한 이 명절을 박대해서 설은 권력과 언론에 의해 타파해야 할 미신인 양 취급당했다. 전두환 정권은 가까스로 민속의 날이라고 해서 마지못해 용인했다.
저항과 투쟁 있을때.. 그때 한국인은 시간의 주인
시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시청사와 기차역 시계탑 이마에 붙어 있는 시간은 고지이자 명령이다. 이는 시간채찍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손목시계 안에 갇혀 있을 때 출근과 퇴근뿐이다. 일터에서 시간이란 일종의 영수증과도 같다. 이와 같이 시간이란 물리적 환산만은 아니다. 역사에서 시간을 일제강점기, 개발독재 따위로 부르는 까닭만 봐도 그렇다. 그 시기에 3.1운동이 없고, 헌법 전문에 빛나는 4.19와 저 반유신투쟁과 자랑스러운 6월항쟁이 없었다면 한국인은 시간 주인으로 산 게 아니다.
빼앗긴 들에 봄 안온다.. “노예의 시간 뿌리쳐야”
갑오년 봄은 어디서 오는가. 수상한 봄에 관한 유명한 인용구는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自)이다. 흔히들 흉노에게 끌려갔다는 여인 왕소군이 읊조렸다고 하는데 정작은 잘 알려지지 않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쓴 시(昭君怨三首)에서 나온 것이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 봄을 표현하는 일을 넘어 수상함에 맞서는 통렬한 시어는 한국에서 터져 나왔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이상화의 이 시 한 줄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 저 들판에서, 이 도회의 광장에서 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노예의 시간을 이 대지에서 뿌리치고자 하고 있다. 그제야 비로소 봄이 올 수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부르지 않은 봄.. 대한민국은 여전한 겨울
오늘, 그 봄은 어떻게 오고 있는가. 지난 대선에 대한 이의제기 없이도 봄은 오는 것인가. 그와 관련한 검찰수사는 어디쯤에 있는가. 어째서 야당은 헌정질서 훼손에 대해 이토록 조용한가. 헌법은 대체 무엇에 쓰는 문서인가. 국정원 대선개입을 입증할 증거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를 제외한 채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한 경찰 책임자의 혐의가 무죄가 된 것은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그 행위는 정말 아무런 위법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6월 지방선거는 안전할 수 있는가. 증거에 대한 논박을 떠나 이석기 의원에게 구형된 20년형이라는 그 엄청난 형량은 공포를 통한 대중침묵을 위한 것으로 느껴지는 게 괜한 우려인가. 다음 차례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공화정의 성립요체인 절차의 윤리성을 파괴한 부정은 음모를 넘어 이미 행위를 한 것인데 무슨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빼앗긴 들, 빼앗긴 자유.. 얼어붙은 민주주의
보다시피 오늘 TV에서는 무얼 방영하고 있는가. 언론이 사망한 사회에서 왜 인간은 상상의 자유까지 제한 받게 되는가. 이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집요하게 자기검열을 수행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또 말을 하기라도 하면 종북이라도 되는가. 실체 없는 종북의 끝은 어디쯤이며, 마침내 누구를 향해 돌진할 것인가.
동토의 대한민국.. 잃어버린 권리 혹은 기억들
경제민주화는 어디서 길을 잃고 민주화를 팔아먹어버렸는가. 경제민영화 혹은 자본만을 위한 민주화는 아니었는가. 국토를 달리던 철도는 바야흐로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그토록 확언하던 복지는 누구 옷에서 장식단추가 되었는가. 걸핏하면 입에 올리곤 하던 맞춤형은 가령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대학 청소부들에게 무엇인가. 전체 한국인보다 더 많은 1억400만 건 정보유출사건은 무얼 말하고 있는가. 내 개인정보는 어디를 떠돌고 있고 누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가. 마침내 나는 누구인가.
“민주주의의 봄은 한 번도 공짜가 없었다”
민주주의의 풀과 꽃이 자라지 않는 이 수상한 봄의 대지에는 무엇이 피어나는가. 의문이 너무 많아 봄은 더디만 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봄은 한 번도 공짜가 없었다. 이것만은 의문이 아니다.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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