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 다음은 시민단체.. 그 다음은 개인”
“독재의 칼.. ‘국회 해산’의 역사”
1972년 10월 17일 국회는 해산되었다. 유신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이 장기집권을 위해 만든 3선개헌 헌법을 스스로 부정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유신헌법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예 헌법에 국회해산을 명문화했다.
그보다 앞서 5.16 쿠데타 세력은 정권을 장악한 뒤 한낱 포고령으로 민의원과 참의원 국회를 해산했다.
80년에 등장한 신군부세력은 자신들이 만든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 당시 국회의원 임기는 이 헌법시행과 동시에 종료된다고 명시했고, 헌법에 여전히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리를 적시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소멸한 것은 6월시민항쟁으로 탄생한 6공화국 헌법, 곧 현행헌법이다.
“근대정치의 꽃, 의회.. 정당 존립은 주권자의 몫”
근대 정치체의 꽃은 의회다. 사법부란 서구사회에서 사제의 심판자 권한을 상징적으로 잇고 있다. 법복이 검은 까닭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제는 왕정의 집행권을 상당 부분 계승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선출권력으로서 대통령제는 권력의 장기집권을 막는 일뿐 아니라 주권자가 이를 완전히 위임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출권력의 문제는 선출 뒤 주권자가 이를 회수 또는 철회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근대사회 선출제도의 원초적 모순이다.
삼권분립제도에서 근대의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 건 의회다. 의회의 권능이 무시되는 대통령제는 다분히 봉건적 권력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의회는 정당에 의해 존재하고 또 운영된다. 정당 없는 의회란 이미 의회라고 보기 어려운, 신분의회나 어전회의와 다를 바 없다. 정당의 존립은 주권자에 의해 결정, 유지, 해체되어 왔다는 건 모두가 아는 대로다.
“행정권력이 정당해산.. 위임권력의 주권파괴”
공화정인 복수정당 국가 대한민국에서 행정권력이 특정 야당에 대해 정당해산을 결정했다는 건 이 공화정 자체가 중대한 위기로 치닫고 있는 사태다. 법무부가 말하고 있는 해산 근거란 고래로 써먹던 매카시즘적 낡은 공안논리 말고는 달리 없었다. 정당정치를 차압하는 일은 이를 지지하고 또 국회의원으로 뽑은 주권자들의 신성한 권리를 선출된 위임권력이 훼손하는 주권파괴, 정당파괴행위다.
이는 국회해산권을 삭제한 현행 헌법 아래 정당, 특히 야당 중 소수정당에 가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자 탄압이다. 저 유신과 5.16쿠데타와 5공화국이 떠오르는 게 어찌 우연이겠는가. 대선토론에서 통합진보당 후보가 말한 다카키 마사오 발언에 대한 징벌,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개입한 대선부정 여론에 대한 회피와 방향전환을 위한 기획이라는 세간의 평가보다 이는 심각한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민’자를 떼어내야 하는 사태로 가고 있다는 끔찍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정당해산 다음은 시민단체.. 그 다음은 개인”
헌정사상 가장 위험한 정당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등장한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이었다. 민주와 정의라는 말이 이보다 모욕 받은 적은 없었다. 정당해산의 위기에 처한 통합진보당의 주장 대부분은 임시정부 강령이나 제헌헌법 내용보다 진보적이지 못한 대목이 있다. 그들의 논리는 언론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때 열 명에 달하는 국회의원을 배출해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국민과 주권자는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다.
어느 시기든, 어떤 나라든 정권에 의한 정당해산은 민주주의 해산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다음은 차례는 누가 될 것인가. 정당이 무너진 뒤에는 정치와 여론이 소멸하고, 시민단체로 그 칼끝을 향할 게 틀림없다. 그 마지막 차례는 개인이다. 바로 당신 말이다.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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