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성칼럼] 두 자루의 칼

차베스, 그 후

     
서해성 소설가(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서해성 소설가(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마지막 의전으로 우고 차베스의 관 위에 칼 두 자루가 놓였다. 장례 참석자들은 칼 위에 손을 모은 채 차베스 만세를 외쳤다. 장례 주인인 차베스가 이루고자 한 세상 또한 두 자루였다. 그가 주도해 제정한 바 있는 볼리바리안 헌법에도 이는 잘 나타나 있다.

차베스는 남미해방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못 다한 미국에 맞설 수 있는 大남미 곧 그랑컬럼비아Grand Colombia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남미국가연합 결성(2008)이나 남미은행은 그 과정의 산물이었다. 국내 주요 개혁임무를 차베스 정부는 미시온Mission이라 명명했다. 의료, 교육, 주택, 소비재 공급 등 25개 분야에서 사업은 폭 넓게 전개되어 왔다. Mission Barrio Adentro(‘마을 속으로’, 의료기반이 부족한 베네수엘라에 5만 명 이상 쿠바 의사들이 활동하는 대가로 기름 공급)에서 보듯 미시온들은 10여 년 동안 그랑컬럼비아 구상에 따른 조치들과 연계하여 작동했다. 언어와 종족, 식민지 해방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를 자원교류, 자주성을 기초로 한 지역통합과 연대의 방향으로 끌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민중과 석유는 차베스 권력과 볼리바리안 혁명의 ‘원유’였다. 차베스가 석유를 손에 쥔 건 ‘자본가 파업’ 덕분이었다. 출신 성분이 변변치 않은데다 하층 지지를 받는 그가 대통령에 뽑히자 자본가들이 공장을 세웠고 그 가운데는 국영석유회사 PDVSA도 들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이는 친미 사기업으로 전락해 있었다. 자본가의 지시를 뿌리치고 공장을 장악한 노동자들과 함께 그는 복귀를 거부한 10만 명 이상을 내쫓고 새 인력을 투입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 석유가 처음으로 국민에게 이익을 돌릴 수 있게 된 건 이 때부터였다. 이 석유는 차베스의 근육이자 동시에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에 필요한 비용, 라틴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여기에 의존해온 터였다.

ⓒ 뉴스Y 영상 화면캡처
ⓒ 뉴스Y 영상 화면캡처
몇 해 전 카라카스 현장에서 본 차베스는 정치 주술사처럼 보였다. 무대를 장악한 채 쉬지 않고 개혁 내용과 주체와 연대에 대해 말을 하는가 하면, 현장에서 장관을 불러내 군중의 질문에 답을 하게 했다. 일요일 오전에 시작하는 생방송 'Aló Presidente'(Hello Mr. President)는 끝을 정해놓지 않고 진행되었다. 아무리 좋은 혁명이라 하더라도 지도자가 개혁의 시작이자 종착지가 되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베스가 강력한 독재자라는 건 그닥 타당하지 않다. 베네수엘라의 전통적 친미 자본가들은 여지껏 한 번도 해체 위험에 처한 적이 없다. 중심가에 있는 부촌은 호화스런 골프장과 집마다 수영장이 있을 정도다. 총기를 휴대한 사설 경찰들이 외부인의 동네 진입 자체를 막고 있다. 이들이 기반인 친미 보수정당은 일상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차베스가 이끌어온 볼리바리안 혁명의 지속성에 견제와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임은 물론이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차베스가 극렬한 반미주의자라고 보는 것 또한 무리다. 그는 자주성을 외치면서도 상대적으로 싼 값에 석유를 파는 등 내용적으로 미국과 적대적 관계만을 형성해온 건 결코 아니다. 종속은 피하면서 라틴 연대를 모색해온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베네수엘라의 미래는 친미 자본가 그룹과 개혁을 이끌고 있는 볼리바리안 서클 활동가, 또 상당히 넓게 형성하고 있는 운동세력 사이 한판 승부일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 권력이 개혁을 재차 승인 받지 못한다면 라틴 연대는 뚜렷하게 느슨해질 것이다. 설령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차베스라는 인물의 정치적 카리스마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권력 재구성 과정은 미국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테러 같은 물리력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교활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차베스 관 위에 놓인 칼은 두 말할 것 없이 시몬 볼리바르의 칼이다. ‘조심해라 조심해라 볼리바르의 칼이 라틴아메리카를 도려낸다’는 라틴 자주성을 나타내는 유명한 구호다. 볼리바르처럼 차베스도 뜻을 다 달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그랑컬럼비아로 가는 길은 멀다. 라틴 공동통화, 통합군 등은 물론, 미시온 덕분에 최악의 양극화는 면했지만 안팎으로 과제는 산적해 있다. 오늘 카라카스의 눈물은 그저 뜨거운 것이 아니다.

역사를 바꾸는 일은 두 자루의 칼을 하나의 칼집에 넣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다. 지도자와 민중의 동행이 그렇고, 자주와 국내개혁도 그렇다. 차베스가 볼리바르의 칼을 빌렸듯 앞으로 베네수엘라는 차베스의 칼을 어떻게 빌려 쓰느냐가 핵심 숙제로 남았다. 그 칼은 양날 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칼이 있는가. 

※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라틴 아메리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단구. 컬럼비아의 진보적 정치인 호르헤 가이탄(48년, 두 번째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암살당함)의 유명한 구호를 세르지오 오르테가(칠레)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 노래 Quilapayun(Nueva canció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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