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해성] 가장 추운 가을

“먹고살게 해줄거란 ‘기대’는 추풍낙엽되고”

가장 추운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차가운 가을이다.

서해성 소설가(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서해성 소설가(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경제민주화는 헌법적 준수사항일 뿐”

지난 7월 현 권력은 경제민주화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리가 없다. 이에 상응할 만한 조처도 달리 없었음은 물론이다. 사실 경제민주화는 애초부터 공약인 것 자체가 괴이한 일이었다. 헌법 119조 2항에 나와 있는 이 내용은 준수사항이지 공약일 수가 없는 터다. 이 조항의 참뜻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나타나는 부와 재화의 사회적 불균등을 헌법을 통해 해소코자 하는 데 있다.


“박근혜 대표 복지공약 줄줄이 파기”

현 권력이 대선기간 동안에 제시했던 2대 복지공약 또한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있다. 4대 중증질환을 정부가 책임지겠다더니 환자부담이 가장 큰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는 제외되었다. 또 하나의 복지공약인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주겠다던 기초연금제도 사실상 파기되었다. 참고로 2008년 총선 때는 9만 원에서 36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적도 있다. 아울러 ‘만 5세까지 무상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약속도 날아가버렸다.


“먹고살게 해줄거란 ‘기대’는 추풍낙엽되고”

적어도 앞으로 4년 동안 복지는 없는 세상이 된 셈이다. MB정부에서 현 권력으로 이어지는 동안 국민이 기대했던 건 솔직히 인권 등 민주적 신장보다는 ‘먹고살게는 해줄 것’이라는 모종의 막연한 믿음이었다. 그 핵심은 일자리와 복지로 압축해서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대선에서 복지는 주권의 내용이자 실체였던 것이다. 권력을 장악 7개월 만에 이는 가을날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강자 위한 복지.. 사유물로 전락한 국가”

약속 없는 권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약속 없는 미래뿐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거용 슬로건으로 쓰고 버린 뒤에 남는 건 강자를 위한 복지다. 이러한 복지는 없다. 근대국가의 법과 제도란 애초부터 강자의 횡포에서 보통사람, 곧 시민을 지켜내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권력이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쓴 채 강자만을 위해 존재할 때 국가는 강자의 사유물로 전락하고 만다. 군림하는 권력은 시민사회, 시민국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복지 없이는 선진사회도 창조경제도 없다”

복지가 빈자를 부자로 만드는 정책이 아님은 물론이다. 복지의 보수적인 뜻은 상대적 약자들을 노동할 수 있는 안정적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사회적 조처들인 것이다. 이것이 19세기 말 프로이센에서 맨 처음 복지가 탄생한 이유다. 잉글랜드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복지를 들고 나온 까닭도 다르지 않다. 복지 없는 선진사회란 없다. 뜻은 알 길 없지만 복지 없는 창조경제도 없다. 복지가 없다면 이 선진과 창조란 강자를 위한 배려일 뿐이다.


“복지 없는 길고 추운 가을 맞게될 것”

그리하여 우리 주권자들은 현 권력의 탄생을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마땅히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복지가 날아가버려 복지 없는 길고 추운 가을을 맞게 된 것이다. 이는 수확이 없는 가을 들판과 다를 바 없다. 만5세까지 영유아들은 미래를 빼앗겼고,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픈 사람들은 차별 진료가 불가피해졌다.


“옷은 바꿔 입어도 약속은 뒤집어선 안돼”

권력 책임자가 국가와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혼인 약속을 내용에서 깬 건 맞다고 볼 수 있다. 공약 불이행이다. 더구나 국민은 하객이 아니다. 국가와 결혼이라는 말은 자신을 국가와 일치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는 권력뿐일지 몰라도 주권자가 생각하는 국가는 합리성 이성을 가진 약속을 지키는 공동체다. 복지도 기회균등도 보장되는 나라다. 옷은 자주 바꿔 입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책을, 약속을 일상적으로 뒤집는 일은 혼인을 내용에서 뒤집는 일이다. 정권 운용은 패션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권자 겁박하는 정권.. 복지 대신 회초리인가”

며칠 전 현 권력의 한 핵심은 집회시위를 막지 못하는 경찰은 교체되어야 한다고 공권력과 주권자를 동시에 겁박하는 말을 했다. 복지 대신 회초리만 남은 권력이 되려고 하는가. 복지 없는 긴 가을에 남는 회초리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 가장 추운 가을의 첫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없는 사회적 겨울을 나야 하는 건 누구인가. 가을바람이 묻고 있다.  

※ 편집자주: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데일리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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