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해성] 철탑을 위하여

“초등학생 꿈이 ‛정규직’인 나라”

※ 편집자주: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데일리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소설가 서해성 (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소설가 서해성 (한신대·성공회대 외래교수) ⓒ 서해성 교수 페이스북

“초등학생 꿈이 ‛정규직’인 나라”
한국은 세계 최고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나라다.
한국에서 노동자는 반 남짓 날품으로 파견인생을 살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의 꿈이 ‘정규직’인 나라다.
정부통계로 25%(2010년, OECD 평균은 12%), 노동계 추산 5할이 비정규직이다.
이는 노동착취와 노동배제가 결합해서 창조해낸 강자를 위한 악의 황금분할이다.

“약육강식이 제도화 된 사회”
비정규직법, 파견노동법은 실질적으로 강자의 일방적 지배를
대의제 국가가 성문화한 문명사회의 야만문서다.
약육강식을 제도화한 구조적 폭력인 것이다.
법률이 언제나 선인 것은 결코 아니다.
로마사회에서 노예법은 성스러운 합법이었다.
이 합법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이 야만은 지금도 합법일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가.. 내게 무엇인가”
한국은 터키, 그리스, 멕시코를 빼고
세계에서 자영업자 비율(33.3%, 2008년)이 가장 높은 나라다.
세 나라는 역사문화적인 이유로 관광업이
사회생산 비중을 특별히 많이 차지하는 곳이다.
날품과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납세자, 주권자는 누구인가.
내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국가란 대체 나에게 무엇인가.

“철탑으로 내몰린 사람들”
이들이라고, 어찌 더 살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꿈이 없겠는가.
이들은 옆으로 갈 수 없다.
수평이동도 결코 쉽지 않다.
이들은 식구 중 한 사람만 크게 아파도 전세방을 빼서
사글세로 이사 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글세에서 밀리면 반지하방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도 내몰리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이제 남은 곳은 위쪽뿐이다.
허공과 하늘.
용산 남일당 옥상과 저 수많은 철탑 농성과 크레인 농성이
이를 통곡과 죽음으로 웅변하고 있다.

“일제도 굴복한 철탑.. 오늘 우리는?”
1931년 5월 29일,
여성노동자 강주룡이 평양 대동강변 을밀대에 올라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였다.
따지고 보면 정자 위 지붕이었을 뿐이고,
지붕에 머문 시간 8시간이었지만 하물며 일제마저
옥중단식투쟁을 더한 그의 요구에 굴복하였다.

오늘, 우리의 철탑은 어떤가.

“철탑을 위하여”

철탑을 위하여

나는 왜 철탑에 오르는가.
더는 옆으로 갈 수 없을 때
나는 땅 밑으로 내려갔다.
지하사글세
나는 왜 옥상에 오르는가.
옆으로도
더는 밑으로도 갈 수 없을 때
나는 허공으로 오르기로 결정했다.
주인도 구사대도 경찰도 올 수 없는 옥상 철탑에서만
너를 기다릴 수 있었다.

용산 남일당 옥상에서
울산 철탑까지
나는 허공을 오른다.
내 영토는 하늘뿐.
사글세도, 손배가압류 차압도 없는 곳은 이곳뿐.
고압선을 밟고 선 채
허공의 일부일 때만 나는 자유롭구나.
번지수가 없는 곳에서만 나는 비로소 인간일 수 있구나.

해와 달이 아직 없을 때
하늘에서는 밧줄이 내려올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올라야 하는가.
해는 저렇게 뜨겁게 이글거리는데
나는 무엇으로 해가 되고 달이 될 것인가.
얼마만큼 더 올라야 별이 되고 구름이 되는 것인가.

나는 왜 철탑에 오르는가.
옆으로도, 밑으로도 갈 수 없어.
나는 왜 옥상에 오르는가.
내쫓긴 동물조차 오르지 않는 철탑에서
내 목숨마저 비정규직인 채
내 인생마저, 내 사랑마저 파견근무인 채
옆으로도, 밑으로도 더는 갈 수 없어
나는 불타는 옥상을 오른다.
나는 오늘도 위태로운 철탑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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