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가 기체될때 비로서 민주주의”
액체 민주주의 사회
한국에서 전기는 액체다.
차라리 액체다.
밀양 송전탑 전기는
할머니 팔뚝 불거진 핏줄을 타고 흐른다.
밀양보다
더 멀리 흐를 수 있는 전류는 없다.
이곳에서 전기는 붉은 색이다.
주름진 가슴을 적시는 눈물이거나 피다.
문명사회의 ‘숨은 햇볕’(密陽) 전기는 화악산 중턱에서 액체다.
그대가 잊을수록 붉어지는.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도 액체도”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도 액체다. 피와 눈물 없이는 한 걸음도 제 몸을 옮겨온 적이 없는 게 한국 근현대사다. 그리하여 모든 정의의 역사는 액체다. 이 가을 밀양과 함께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울고 있다.
“액체가 기체될때 비로서 민주주의”
액체 민주주의가 기체로 바뀔 때 민주주의는 일상이 된다. 문득 숨이 막히는 걸 자각할 때,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을 강요당할 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돌로 굳어 저 언덕에 서 있을 때, 쇠로 부어 권위 높은 존경이 될 때, 이를 독재라 한다. 고체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고체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아니다”
동상 민주주의는 일상에서는 닫힌 권위로, 소통 없는 독선으로, 반인권으로 나타난다. 이 체제는 주권자더러 고체 민주주의를 흡입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운동을 멈춘 액체가 마치 고체로 굳어가는 과정과 닮았다. 액체 민주주의를 기체로 바꿔내지 못하게 되면 겪게 되는 일이다.
“고체 민주주의를 녹여라”
지금 한국에서 필요한 일은 이 고체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 하는 것이다. 독점당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닌 까닭이다. 독점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형식을 빌린 강자의 지배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슴 아프게도 고체 민주주의를 녹여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피와 눈물뿐이다.
“밀양은 사회적 문제의 ‘대속자’.. 숨은 햇볕”
그리하여 오늘 밀양을 타고 흐르는 전기는 액체다. 이곳에서는 단지 고압 전기만 흐르고 있는 게 아니다. 공동체 붕괴, 한국의 가장 약자인 농촌 노인들의 삶 파괴뿐 아니라 국가 행정권력과 법원의 결탁, 자본권력의 횡포, 인권은 물론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질문 등이 얽혀 있다. 이 모든 문제들에 관해서 밀양 사람들은 대속자로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시련은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전구 하나를 켤 때마다 밀양은 이름 그대로 ‘숨은 햇볕’으로 되물을 것이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안전하냐고. 당신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고체화되었느냐고. 타인, 그 중에서도 약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자는 민주주의를 망각했거나 고체 민주주의자일 따름이다.
“하늘에서 다시 땅 밑으로 내쫓기는 약자들”
지난 정부에서 한국인들은 하늘로 올라야 했다. 용산 남일당 옥상 위로, 영도 골리앗 크레인 끝으로 약자들은 내쫓겼다. 현 권력 아래 밀양에서는 무덤을 파놓은 채 땅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지하 공화국, 땅 밑 민주주의를 끝내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해를 품은 땅 밀양, 밀양에서 해는 어디에 뜨는가. 피와 땀의 액체 민주주의가 묻고 있다.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데일리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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