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와 동행할 때만 ‘정의’
‘시대의 창에 내리는 눈은.. ’
저녁 하늘로 퍼져가는
저 교회 종소리에 수갑을 채우는가
차라리
지금 퍼붓고 있는 눈을
기소해다오
눈은 유죄다
길이 끊겨
멀리 있는 이를 그리워하게 하고
양심의 순결을 떠올려 괴롭게 하는
겨울밤을 또한
기소해다오
밤은 유죄다
책상 앞이든 거리든
촛불은 유죄다
반짝이는 것들이여
나의 감옥에는 유죄 아닌 것이 없나니
눈물은 유죄다
겨울비와 나란히 서면
올 한 해는 온통 유죄다
옷을 벗기고
채찍에 맞아
알몸인 채로 신음을 앓고 있는
저 바람소리가 오라에 묶이는
밤이 길어
나는 유죄다
죄 없는 것들이 유죄일 때
시대의 창에는 눈이 퍼부어
희디흰 비명소리
눈이 유죄인 세상에서
나는 더 할 수 없이
눈을 사랑하여
눈은 명백히 유죄다
겨울비와 동행할 때만 ‘정의’
헌법 첫 줄이 비에 젖어가고 있는데 밥이 잘 넘어가는 걸 보니 나는 유죄다. 저 바람과 서리와 성애와 이 겨울비가 다 유죄다. 진실이 유죄일 때 죄를 지은 자들은 죄를 모르니, 죄 없는 자가 유죄일 때만 정의의 문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시대의 열쇠다. 언제나 조금 늦게 당도하는 정의를 탓할 것은 없다. 정의는 높은 관념으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만 동행하는 벗과 같다.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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