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해성] 문익환을 부른다, 민주주의를 부른다

민주와 통일 향한 열정.. 문익환을 부르는 까닭

문익환을 부른다, 민주주의를 부른다

 

[문익환]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시를 쓸 때는 윤동주

행동할 때는 장준하

내일을 오늘로 가져오고자

어제마저 미래로 삼은 지혜

모든 패배에서 승리를 읽어내던 용기

정의는 오늘 현장에서 지더라도

마지막 승리는 늘 정의의 몫이다!

그대,

문익환

죽어서도 정녕 청년인,

저 문익환



이름 석자에 눈물 흘린 160만.. ‘거룩한 노래’

문익환 목사는 1987년 7월 9일 연세대학교 뒤 노천극장에서 열린 이한열 학생 장례 조사에서 목 놓아 이름을 불렀다. 형식은 조사였지만, 조사는 없었다. 노래도 아니었다. 오직 이름 석 자들만으로 삼천리는 그날 격동했다. 전태일에서 이한열까지. 역사를 창조해낸 서울 1백만, 광주 50만 등 160여 만 인파는 그날 그 이름들로 울었다. 그것은 가장 거룩한 노래였고, 가장 뜨거운 광야의 시였다. 어떤 조사도 이를 당할 수는 없다. 그 힘은 오직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시로 돌아온 이름.. ‘문익환’

그 뒤 십 년이 채 못 되어 문익환은 이름으로 불렸다. 오직 문익환이라는 이름만 스무 번, 서른 번 외쳤다. 그의 벗 고은 시인은 대학로에서 열린 노제에서 시도 버리고, 조사도 버리고 문익환만을 호명했다. 문익환에서 문익환까지. 그것이 시였기에, 그것이 노래였기에. 그것이 초혼이었기에.

수많은 이름의 희생이 피워낸 꽃.. 민주주의여!

문익환이 87년 그날 그 흙 언덕 극장에서 부른 이름은 스물 몇 명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민주주의 제단에 누가 올라 있는지 새삼 깨달아야 했다. 저 열사들이 그들이다. 오늘 그 이름을 다시 부른다면 십 분으로는 부족하다. 한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이 땅 민주주의는 미처 다 부를 수 없는 그 이름들에게서 왔다. 이름의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마 다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의 희생으로 피어난 꽃이, 이 땅의 민주주의다.

민주와 통일 향한 열정.. 문익환을 부르는 까닭

며칠 전 1월 18일은 문익환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되던 날이었다. 그는 죽었지만 다 죽은 것은 아니다. 그가 헤쳐온 민주주의, 그가 넘어온 통일대장정, 그가 퍼부어 온 사랑과 열정은 한시도 죽은 적이 없다. 오늘 그의 이름을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익환을 부르자.. 이 땅 정의를 위하여

문익환을 부르자. 그를 불러 민주주의를 불러내자.
문익환을 부르자. 그를 불러 통일을 불러내자.
문익환을 부르자. 그를 불러 인간 사랑을 불러내자.

열정 없는 사랑은 향기 없는 꽃과 같고 사랑 없는 열정은 광폭하기 십상이다. 문익환, 그가 남긴 가장 큰 자산은 세상 사랑이다. 애초에 선에서 출발해 기필코 선에 도달코자 한, 인간 문익환을 그리워하자.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뜨겁게 벅차기에. 민주주의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그 이름들을 불러내는 일, 그리하여 그 값진 역사를 현재화하는 일, 이 땅 정의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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