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해성] 갈 길 모르는 길들.. 오늘 길을 묻다

철도 싸움 ‘길 지키기’ 몸부림.. 시장화는 곧 약탈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서해성 소설가(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페이스북(서해성)'

갈 길 모르는 길들.. 오늘 길을 묻다

오늘 길이 묻고 있다. 길은 어디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가. 길이 갈 길을 몰라 서성이고 있다. 철도가, 고속도로가, 지하철이, 하물며 저 공항과 활주로가 길을 묻고 있다.

바람에도 길이 있고, 눈발에도 길이 있다. 닭이 지나다니면 울 밑에도 길이 나고 강아지도 개구멍을 내서 제 길을 삼는다.

길은 ‘살아있는 것’의 움직임.. 흔적이자 소통

살아있는 존재의 움직임을 이를 때 길이라 한다. 숨이 지나면 숨길이다. 죽음마저 길로 가기에 죽음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죽음은 죽어서 죽지 않은 채 길로 살게 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길의 종교’ 도교가 있겠는가.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는 말은 길의 뜻을 무릇 심오하게 함축하고 있다. 이렇듯 길은 산 것들이 오가는 흔적이자 경로이자 소통이자 ‘스스로 그렇다’는 의미를 지닌 자연 그 자체다.

길의 죽음은 인간세계의 끝.. “문명의 위기 온다”

길은 길로써 구체이자 스스로 은유다. 오직 길만이 그러하다. 길은 형상이자 내면인 존재이자 가치를 품고 있다. 길은 시이자 산문이고 침묵이자 음악이다. 들길은 노동이고, 대상이 이동하는 사막길은 종교의 길이자 장사의 길이고, 먼 길은 여행이자 인생이다.

길은 태어날 뿐 죽음이 없다. 문명세상이란 곧 길의 숨결이자 역사다. 모든 신화와 물질과 정신은 길을 타고 오갔다. 길이 죽으면 곧 인간세계의 멸실이다. 종의 끝이다.

길의 운명은 인간문명의 운명이다. 그 길이 오늘 위기에 처하고 있다.

누가 길을 빼앗는가.. 생명체를 누가 팔려는가

누가 길을 훔치려 하는가.

길과 더불어 물, 불(빛, 에너지), 몸(건강), 밥 등 한 글자로 된 것들은 극히 소중하여 한 글자일 뿐이다. 이는 자연이 지상 생명에게 두루 내려준 거룩한 살림이다. 누가 이 원형적 가치를 상품으로 바꾸려 하는가. 먹고 쓰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들은 상품 이전의 상품들, 곧 상품으로 존재해서는 마땅치 않은 생명체로서 본질과 근간을 이루는 것들이다.

오늘 길을 빼앗긴 자는 미래를 빼앗기고 만다. 일백여년 전 길을 빼앗긴 조선의 운명은 어떠하였는가. 그때는 이민족이 빼앗고 오늘은 자본이 앗으려 할 뿐 구조적 차이는 별반 없다.

철도 싸움 ‘길 지키기’ 몸부림.. 시장화는 곧 약탈

철도 싸움은 그 길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 행동이야말로 인심의 길이요, 만인의 길이자 길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생명체가 대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일이다.

그 길이 죽어가고 있다. 내남없이 지켜내고자 하는 이 길이 죽으면 민주주의가 죽어버리고 만다. 시장화 된 길 위에서는 시장적 가치만이 군림할 뿐이다. 길이라는 사회적 혈관을 상품화하는 행위는 대자연의 법칙과 근대국가의 본질을 실질적으로 부인하는, 길의 약탈이다.

길이 묻는다, 국민이 묻는다.. “누가 길을 훔치는가”

그리하여 다시금 길이 묻고 있다.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길의 이름은 국민이다. 이들이야말로 가장 큰길 대로다.

누가 길을 훔치려 하는가.

또 묻고 있다.

세밑에 찾아가는 당신의 고향 가는 길은 안녕하신가.

길이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답을 듣기 위하여.

누가 길을 훔치고 있는가.

‣ 12.26 데일리 고발뉴스, 서해성의 3분직설 (12분57초~)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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