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어 내미는 손.. “봄에는 국경이 없다”
이효리와 촘스키의 손.. 한국사회 봄의 시작
이효리와 촘스키가 만났다. 두 사람은 직접 대면한 적 없이, 만난 적 없이 손을 맞잡았다. 대중 예술인의 4만7천 원과 세계적 실천지성의 47달러가 만난 것이다. 두 아름다운 손의 이름은 ‘손잡자’ 프로젝트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봄을 만들고 있는 건 이 손들이다. 이들이 황사와 미세먼지를 뚫고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국가․법원의 합작품.. 24명의 희생, ‘손배’ 47억
한국에서는 파업을 하기도 어렵지만 파업을 하려면 목숨과 돈을 내어놓아야 한다.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세 권력인 자본과 행정부 법원이 이를 오래 전부터 합작해왔다. 작년 11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금속노조 간부들에게 법원은 47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파업 대가는 이미 세상을 떠난 24명의 목숨과 47억 원을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노동자 하늘로 내모는 ‘손배․가압류’
‘손배가압류’라 부르는 이 야만에 항의해 두산중공업 배달호 노조위원장이 몸에 불을 붙인 것은 2003년 1월이었다. 한진중공업 김주익 위원장이 129일 동안 고공농성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그해 10월이었다. 이들은 모두 파업 뒤에 징벌보다 무서운 손해배상·가압류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났다. 김진숙이 다시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싸운 것도 마찬가지였다.
파업..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엄숙한 권리”
중세에는 파업이 없었다. 봉건체제에 예속된 자들에게 파업이란 도주이거나 봉기였다. 근대사회가 중세와 다르다면 세습되던 신분에서 다수 대중이 해방된 일이다. 이들은 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임금노동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과 운명을 틀어쥔 지배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일터에서 일을 하지 않는 권리였다. 공장 기계를 세우고, 철도를 쉬게 하고, 망치와 펜을 내려놓았다. 이와 같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관철하는 행위를 파업이라고 한다. 이는 노동하는 자유인의 엄숙한 권리다. 어느 나라든 헌법에 이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력화된 노동3권.. 유린당한 노동의 자유
(현행 헌법 33조) 유명한 노동3권이 이것이다. 노조를 조직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인 단결권, 노동조건을 교섭하고 규약하는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이다. 행동권은 소송이나 자구행위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투쟁행위를 말한다. 이 쟁의권은 애초부터 민형사상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조문은 무력화된 지 오래다.
파업 대가 ‘손배․가압류’.. 약자 겨냥 ‘또 다른 폭력’
근대 이래 축적해온 문명사회 인간의 자주적 노력과 합의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야만을 한국사회는 거침없이 자행해왔다. 파업 뒤에 닥쳐오는 손해배상·가압류에 생활과 목숨을 빼앗긴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노태우 정권에서 시작된 이 사태는 IMF 구체금융 이후 더 본격화되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렇게 노동자의 권리박탈을 요구하면서 전개되었다. 광범한 비정규직 양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를 날품사회로 전락시켰고 파업을 사회악인 양 둔갑시켜 법원을 통해 손해배상·가압류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통해 권리를 보장, 확장 받도록 한 행동권을 도리어 돈이 없는 약자에게 전도시키는 폭력이다. 다른 나라의 예는 들고 말 것도 없다. 돈 없는 자에게 돈으로 보복을 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졸렬하고 폭압적인 까닭이다.
노동권리 후퇴=민주주의 퇴행.. ‘정치행위의 비밀’
노동권리의 자유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허상일 뿐이다. 오늘날 노동권리의 전반적 후퇴는 단지 노동자와 노동권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는 자본가만의 이익을 옹호하는 일을 넘어 사회개혁의 핵심 주체인 노동자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일이야말로 이들의 노골적인 비밀인 것이다.
국경 넘어 내미는 손.. “봄에는 국경이 없다”
노동3권이 없다면 오직 일을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이 문명사회는 봉건사회와 다를 게 무엇인가. 이 사태를 보다 못해 마침내 국경을 넘어 시민들이 손을 내밀고 나서기에 이른 것이다. 이효리의 손을 잡을 것인가. 촘스키의 손을 잡을 것인가. 가장 먼저 돈을 낸 용인 사는 주부 배춘환의 손을 잡을 것인가. 봄과 사회정의를 만들어내는 손을 내뻗자. 우리 시대의 손은 이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봄에는 국경이 없다.
| 나는 나를 하늘에 묻는다 -고 김주익 위원장 이름으로 골리앗 크레인을 오르며, 나는 들었다 -한겨레신문 2003년 10월 23일 |
‣ 3.6 <데일리 고발뉴스> 서해성의 3분직설 (8분 55초~)
[편집자註] 서해성 교수의 ‘시론’은 매주 목요일 뉴스독립군 <고발뉴스>를 통해 방송되는 ‘서해성의 3분 직설’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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