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나오는 사회.. 무한 신뢰가 열쇠
휴가 끝나고 일로 복귀한 첫날, 우편물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떻게 배달 시작하고 한 시간 반 남 떼어주고 다섯 시까지 우체국으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뛰어야겠습니다.
아무튼 늘 하던데로 점심시간에 15가 스타벅스 찾아와서 점심을 먹으려니, 아는 얼굴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예전에 온라인 커피라고 하는 카페에서 일했던 애니가 이곳 스타벅스의 바리스타가 되어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했고, 예전 배달구역의 손님이었던 앤튼이라는 흑인 친구도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어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여기에 커피도 55센트로 가격을 깎아 주어 참 기분 좋은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부터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두 주 일하면 또 한 주의 휴가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첫 날이 쉽게 흐르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이 힘들다는 것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듯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아내가 싸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런 일상이야말로, 휴식 시간을 더 휴식답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최근 소방공무원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는 것을 뉴스로 보면서 갑갑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미국에서 소방공무원은 주민들의 신뢰도로 볼 때 경찰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직업입니다. 소방공무원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보통 남들보다 체력 조건도 좋아야 하고, 나름 공부도 더 많이 합니다. 일하는 조건 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높은 연봉을 받으며 주민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영웅을 만드는 조건은 여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지역사회의 영웅’이 될 수 있는데는 당연히 높은 교육수준, 충분한 훈련과 풍부한 장비, 훌륭한 처우, 그리고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존경과 신뢰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소방공무원에 대한 대접을 보면서, 저는 ‘영웅’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신뢰와 존경’을 정부의 필요, 그것도 자기들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졸속으로 만들어낸 조직으로 덮기 위한 과정에서 빼앗아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직업에서나 영웅이 나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는 사회. 미국에서 이런 공무원들에 대해 굳이 Hero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는 이들에 대한 무한 신뢰가 이뤄지는 분위기가 되기 때문이고, 이런 직업들에 대해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체부들도 가끔 이렇게 hero 가 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며칠간 우편물이 치워지지 않는 것을 보고 경찰이나 소방서에 연락해 집안을 수색해보니 넘어져 골반 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며칠째 움직이지 못한 노인들을 구해내는 경우도 있고, 불이 난 걸 보고 뛰어들어 사람을 구해낸 우체부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 사회의 신뢰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잠깐 해 봤습니다.
다시 거리로 나갈 시간입니다. 아 얼른 달려야 일 시간 안에 마칠 것 같네요. 어쨌든 한국에서 요즘 1인시위하시는 소방공무원 여러분께 응원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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