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비스기사 아내의 증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부당한 임금제도와 협력업체 사장의 폭언 등으로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故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지 20일 되는 날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들이 모였다.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서울과 경기, 충남 지역 등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조합원의 부인들과 함께 이들이 처한 현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자리에는 이들의 증언을 듣기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은수미 의원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위원장(최고위원)도 함께 했다.

ⓒ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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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최종범 씨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말 중에 “배고프다”는 말을 왜 했을까 생각이 들어 그에 대해 추적해봤다”며 “실제 9월 실제 수령액으로 19만원이 찍힌 급여 명세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통신비와 차량 유지비, 식대 등은 근로계약상 실비이기 때문에 지급하기로 돼 있어 이를 맞추기 위해 성과급이 ‘-56만 원’이 기재 돼 있는 걸 봤다”며 “결국은 건당수수료와 같은 도급 방식이 장시간동안 일하면서도 저임금으로 시달리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증언에 나선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대문분회 안양근 씨의 부인 김은영 씨는 “매달 월급 받아오면 그때마다 틀리다”며 “애들 학원도 보내고 싶은데 늘 마이너스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성수기인 여름에는 일이 많아 보통 새벽12시에서 1시까지 하는데 그렇게 해서 300~400만원을 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수기 때는 많이 해도 160~170만원이다”며 “이렇다보니 항상 비수기에는 진 빚을 성수기에 벌어서 갚는다”고 말했다.

부천분회 대의원 조기영 씨의 부인 이현아 씨는 “우리는 내일이라는 게 없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 같다”며 “어제 아침에도 차가 고장났는데, 우선 외상으로 고쳤다. 차 구입비보다 수리비가 더 나오고 있다. 월급 200만원 받아서 차 수리비에 기름값, 휴대폰비, 보험료 다 내고나면 남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씨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은 ‘삼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을 하지만 차량유지비와 자재비, 자동차 보혐료, 심지어 주차 위반에 따른 범칙금과 수리에 사용하는 전동 드라이버까지도 자비를 들여 구입하는 실정이었다.

김은영 씨는 “경우에 따라 주차장 없는 일반주택에도 가는데 이 때 주차 딱지 끊어도 고객이 물어주는 것도 아니고 엔지니어가 다 감당해야 한다”며 “자동차 타이어가 파열돼 교체하는 것도 다 우리 돈으로 해야 하고, 약속 시간에 늦어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엔지니어 입장에서 힘드니까 과속 딱지도 한 달에 6~7개는 끊는다. 월급에서도 이 부분이 많이 나가는데 이게 가장 힘들다”고 호소했다.

산재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일하다 다친 남편들이 산업 재해 처리를 하는 것을 부인들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해야 하는데도 “삼성이 넥타이 매고,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을 것을 강요했다”고 전했다.

특히 천안분회 대의원 홍지신 씨의 부인인 정은숙 씨는 “남편에게 들었다. 아침 조회시간에 사장이 여름에 에어컨 실외기 달 때 떨어질수도 있는데 떨어질 때 잘 떨어지라고 했다”며 “잘못해 떨어져 죽게 되면 폐기물 처리비용이 나가기 때문이라더라”고 말했다.

또한 정씨는 “삼성은 매우 만족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기사들은 시간에 맞춰야 하고 일 끝내면 빨리 처리작업 해야 해 예전에는 핸드폰과 PDA가 합쳐진 기계를 보급해줬다”며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기계도 수리기사가 직접 사도록 했다. 그것도 모두 삼성 제품이다. 삼성 기계를 기사들에게 팔아먹고 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서비스 기사들이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사용하려면 삼성의 최고 신형 제품을 사야만 가능하다” 며 “일을 하려면 기계를 안 살 수 없다”고 부연했다.

이날 증언한 부인들의 남편들은 모두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노조가 만들어 진 후 상황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김은영 씨는 “솔직히 노조 만들기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며 “(남편이 일하던) 동대문센터 사장이 표적감사를 위해 지난 3~4년 자료까지 꺼내서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형사 고발까지 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김 씨의 남편인 안양근 씨는 지난 8월 15일부로 해직된 상태다.

권 변호사는 “동대문 센터에 안 씨에 대한 감사가 ‘보복성’이 아니냐고 따지자 센터 측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통상적인 감사라고 말했었다”며 “하지만 감사는 오직 안씨를 상대로만 진행됐으며, 매년 하는 감사라면서 과거 3년 치 이상 수리 기록을 다 꺼내 부정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었다”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에 따르면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삼성의 몇 년동안 ‘이상 데이터’라는 걸 만들어왔다는 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상데이터는 서비스 기사가 고객이 수리비15,000원을 깎아 달라고 해 12,000원으로 데이터를 입력한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 기사 입장에서는 고객 만족도가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힘들다. 삼성 측은 이런 데이터를 축적 해놨다가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감사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앞서 사망한 최종범 씨도 감사 당시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데이터를 제시하며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 의원은 “서비스 기사가 데이터를 잘못 입력했다면 즉각 확인 하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왜 몇 년 동안 모아놓는가? 심지어 피해자들은 자료조차 볼 수 없다. 회사는 감사에서 기사들에게 마치 횡령을 한 것처럼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사측의 탄압으로 힘들지만 좋은 점도 있다. 이현아 씨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 달 동안 평일에 남편이 아이들과 저녁 먹은 게 열손가락에 안든다. 하지만 노조 만들고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
ⓒ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현아 씨가 이날 공개한 남편이 회사로부터 받아온 우수엔지니어 인증서와 격려문, 기술자격증 등을 보면 삼성은 서비스 기사들에게 이같은 것들은 직접 수여하면서 “당사 우수 엔지니어로 인증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인증서 말미에는 ‘삼성전자서비스주식회사 대표이사’ 이름과 직인이 찍혀있었다.

이씨는 이어 “우수엔지니어였지만 노조를 만들면 바로 표적감사를 당한다. 이것이 삼성을 노조를 대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이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바라는 건 삼성의 노조 인정은 물론 고객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삼성식 서비스’를 개선이었다.

김은영 씨는 “급여명세서에 ‘미입금공제금’이라는게 있다. 고객한테 못 받은 수리비를 월급에 차감한다”며 “고객만족이 걸려있어서 억지로 달라고 할 수 없어 나중에 입금해 달라고 하는데 안 해주기도 한다. 고객한테 못 받은 돈을 엔지니어 월급에서 차감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정은숙 씨는 “고객만족제도가 삼성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걸로 알고 있다”며 “남편이 항상 힘들어하는 것이 이 문제다. 고객들은 약속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불만이고 심지어 어떤 고객은 자기 기분에 따라 돈 깎아주면 만족을 준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씨는 이어 “이에 대한 압박감이 굉장하다”며 “고객 만족 평가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남편이 안타깝다. 고객 만족도 평가가 너무 싫다. 사람 잡는 제도”라며 개선을 요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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