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할머니들의 절규, 기억하고 전승해야”
폐지를 수집해 모은 전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향년 90세로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황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생존자는 55명으로 줄었다.
<한겨레>에 따르면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는 황 할머니가 이날 새벽 1시30분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24년 함경도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13살 무렵 거리에서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함경남도 흥남의 유리공장으로 끌려가 3년 정도 일했다. 그 뒤 다시 간도 지방으로 옮겨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방 뒤 남쪽에 정착한 황 할머니는 평생을 ‘위안부 피해 후유증’으로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와야 했다. 위안부 피해 후유증은 환청·환상,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졌다.
김정환 강서구청 사회복지과 장애인복지팀장은 “어느 날은 밤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파출소에 신고해 집 앞에 있는 순사들을 쫓아내 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알고 보니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고 할머니가 놀라신 거다.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검은 제복의 일본 순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황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살았음에도 정부 지원금을 거의 쓰지 않고 통장에 모아뒀다가 2006년부터 강서구청 장학회에 모두 세 차례에 걸쳐 1억 원을 기탁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2011년 7월에는 정부로 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최근 건강이 악화됐던 황 할머니는 남은 재산 3000만원도 모두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황 할머니의 빈소는 서울 목동 이대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8일 강서구민장으로 치러진다.
황금자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서울시는 황금자 할머니에게 사망조의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이는 서울시가 지난해 8월 제정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조례’에 따른 조치다.
해당 조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월 70만원씩 생활보조비와 사망 시 100만원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조례 제정 후 사망조의금이 지원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지난 10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근로자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관련 피해자에게는 별도로 생활보조비와 진료비 각 30만원, 사망조의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편 황 할머니가 별세하자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histopian) “삼가 명복을 빕니다”며 애도 했다.
특히 전 씨는 ““일본 정부는 우리가 빨리 죽기만을 기다릴 것”이라는 할머니들의 말씀대로, ‘살아있는 증거’가 하나씩 사라져 갈 때마다 기뻐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일본 정부 말고도”라며 국내 친일 인사들을 겨냥했다.
그는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몇몇 사람의 증언이 있을 뿐, 일본군과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한국 학계에도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일부 있습니다. 문서만 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에 공감할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라 비판하며 “아무리 극악한 독재 권력이라도 사람을 고문해서 죽이라고 ‘문서로’ 지시하진 않습니다. 다른 범죄도 그렇지만 특히 권력의 범죄는 ‘문서 증거’를 남기지 않습니다. ‘문서 증거’의 유무만으로 사실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되는 이유”라며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규탄했다.
또한 전 씨는 “22년이 넘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수요집회를 이어온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리진 못 할망정, 그분들로 하여금 교학사 교과서 채택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하게 만든 현실이 참으로 참담합니다. 교학사 교과서는 그분들의 일생을 모욕했습니다”라며 지적한 뒤 “일본 정부뿐 아니라 교학사 교과서를 ‘균형 잡힌 역사책’이라고 칭찬한 자들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기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자들이 역사를 쓰고 가르치는 세상에는 '돈'과 '권력'이 있을 뿐 ‘진실과 정의’는 없습니다”라고 친일․독재 미화로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와 일부 정치권을 연이어 비판했다.
그는 글 마지막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절규를 기억하지 못하면, 권력이 남긴 문서만 증거로 남습니다. 그 분들이 다 돌아가시더라도 그 분들의 절규를 기억하고 전승해야 합니다. 교학사 교과서 따위가 제 멋대로 왜곡하지 못하도록”이라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