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존립..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
탈출자는 있을지언정 구조자는 없는 세월호, 국민은 있지만 정부는 없는 대한민국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에 도대체 총 몇 명이 탑승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몇 명을 인양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거의 열흘 동안 총 탑승자가 476명인 걸로 발표됐지만, 4월 29일에 시신으로 발견된 아르바이트생 등 4명의 이름이 정부가 확보한 명단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실종자 수도 틀릴 가능성이 높고, 최종 피해인원이 다 합쳐서 몇 명이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30일에 사고해역으로부터 2km 남짓 떨어진 동거차도 해상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희생자가 한 명 발견됐다(단원고 여학생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사망자가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애타는 가족이 있음에도 끝까지 시신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건 아마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우려하는 일일 테고, 그래서 지금도 정부에 '신속한 시신 인양'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15일간 모두 지켜 봤다시피, 박근혜 정권은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는 듯하다. 사고 발생 첫 날부터 현재까지 인원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으며, 구조작업을 책임져야 할 해경은 일개 사설업체에 작업 주도권을 넘겨버렸고, 언딘의 전횡으로 자원봉사 잠수부들이나 다이빙벨은 현장 접근도 제대로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자 '0명'인 상황에서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그 어떤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국민들의 신뢰를 이용하고 파괴하는 행태를 보여줬다.
지난 보름 동안 대한민국에 국민은 있지만 정부는 없는 상태가 계속된 셈인데, 우리는 이쯤에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짧게나마 한 번 정리해 보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 싶다. 긴 싸움일 게 뻔한 세월호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4월 16일 수요일, 구조자 수 368명?
진도 해상의 여객선 침몰 소식이 곧장 뉴스속보로 전해지고, 국민들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16일 오전에 해양경찰청이 제공한 화면을 통해 큰 시간 차이 없이 그대로 보게 된다. 모두가 가슴을 졸이는 와중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68명을 구조했다는 발표를 하고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는 곧 전혀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난다.
생존자 구조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사고 발생 6시간 이내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이건 두말할 나위 없이 치명적인 잘못이었고, 전국민은 아무것도 못하고 300여 명이 몇십 분에 걸쳐 물 속으로 가라앉는 걸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4월 17일 목요일,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 있으라!"
다른 나라에서는 대형 여객선 좌초 사고 대부분이 승객 다수가 구조되는 데 반해,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보다 희생자 수가 훨씬 더 많은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좌초 당시 선내 방송 때문이었다는 점이 사고 이튿날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실종자 중에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부각되며, 국민들 사이에서 '말 안 들은 아이들은 살았고, 말 잘 들은 아이들은 죽었다'는 고통스런 자조가 터져나왔다. 안 그래도 사회적 신뢰가 지극히 빈약한 한국 사회에서 이 사건의 후유증은 무척 오래 갈 것이다.
4월 18일 금요일, 처음이자 마지막 구조자 174명..
첫째 날부터 사흘째까지 '구조자 수'에서 계속 혼선을 빚던 사고대책본부는 18일 밤이 되어서야 그 수를 174명으로 확정한다. 이건 사고 발생 당시 자력으로 탈출한 이들 외에 새롭게 구조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존자 중에 누가 명을 달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정부 집계상의 단순 오류였고, 슬프게도 이 숫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숫자였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구조자 수는 그 이후 단 한 명도 늘지 않았고, 이들은 엄밀히 말해서 '구조자'라기보다는 '탈출자'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실제로 구조된 사람의 수는 '0명'이었다.
4월 19일 토요일, 먼저 탈출한 선장이 구속되다
사고 나흘째 새벽, 승객들의 탈출을 돕지 않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이 구속됐다. 그리고 사고 여객선의 '선박직' 직원 15명(선장, 1·2·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기관사 3명, 조기장·조기수 4명)은 전원 살아남은 데 반해,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전체 325명 중 단 75명만이 생존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정말 가슴 아프게 했다. 수 많은 아이들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자신의 본분은 잊은 채 그저 살아남기에만 급급한 선원들은 일종의 환멸을 불러왔고, 대한민국 어른들은 모두 죄스러움을 느꼈다.
4월 20일 일요일, 청와대로 가자!
다들 잠든 일요일 새벽, 피해자 가족들은 260여 명이 넘는 실종자 수색 작업에 거의 진척이 없고, '기레기(기자+쓰레기)'들의 막장보도로 한국 언론을 전혀 믿을 수 없게 되자 급기야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항상 늑장대응으로 일관하던 정부가 이 순간만큼은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을 보였고, 수백 명의 경찰이 피해자 가족들의 앞을 일사불란하게 막아섰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오고 국무총리도 왔지만, 허수아비같은 그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를 막을 수 없었고, 날이 밝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상황은 진정되었다.
4월 21일 월요일, 저들은 우리를 '미개하다'고 말한다
사고 발생 후 첫 주말이 지난 월요일, 고위층 인사들의 안하무인격 언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정몽준 의원 막내 아들의 SNS에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게 가장 큰 기폭제가 됐지만, 사실 사고 발생 이후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자극한 고위층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인간들이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고 세금으로 지원 받는 '공인'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보면 저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사고 후 엿새째 되는 이날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고민이 부쩍 늘어났던 것 같다.
4월 22일 화요일, 홍가혜 체포 그러나 민간다이버들은 철수
한 방송 인터뷰에서 잠수 수색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경찰이 홍가혜 씨를 체포한 가운데, 민간다이버들이 '철수' 선언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는 민간다이버들의 구조작업에 대한 해경의 지속적인 비협조가 마침내 심각한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완전히 망가진 상황에서, 그래도 이때쯤부터는 현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여러 대안언론들의 노력이 조금씩 주목을 받으며, 각종 의혹의 실체가 점차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4월 23일 수요일, 국민들의 분노가 청와대를 향하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들은 이제 구조과정 전반의 문제를 살펴보게 되는데, 결국 '컨트롤 타워의 부재'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된다. 그러자 이런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는지, 청와대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입장표명을 해버린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압박을 좀 분산시킬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책임 회피를 위해 섣불리 선을 그으려고 하다가 일순간에 모든 국민의 분노가 청와대를 향하게 된다. 그러자 언론에서도 청와대에 불리한 기사들이 하나 둘 나오고, 노무현 정부 당시의 '위기관리센터 및 각종 메뉴얼' 얘기까지 나오면서 청와대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4월 24일 목요일,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른 언딘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이때까지, 계속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수색 작업의 성과가 없을까?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매일같이 수백 명의 잠수사가 동원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UMI·Undine Marine Industries)'라는 사설업체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차츰 풀리게 된다.
침몰 후 아홉째 날, 언딘과 해경 사이의 특혜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go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인해 다이빙벨 논란이 큰 주목을 받자, 기존 언론에 눈과 귀를 빼앗기고 있던 사람들도 마침내 언딘이라는 괴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4월 25일 금요일, 이상호 그리고 손석희
드디어, 진도 팽목항에 두 개의 큰 별이 빛을 발하게 된다. (전두환 비자금과 삼성X파일을 보도한) 한국에서 가장 탁월한 고발 전문기자 이상호, 그리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스타 앵커 손석희. 종편 <JTBC>의 보도부문 사장인 손석희는 이날부터 팽목항에서 메인뉴스를 진행했고, 며칠 전부터 팽목항에 내려와 변변한 방송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고군분투한 go발뉴스 이상호는 그동안의 진정성 있는 '생방송'으로 피해자 가족들과 많은 국민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바로 이 시점부터 거의 다 죽어가던 한국 언론은 조금씩이라도 숨을 쉬기 시작했고, 그래도 좀 자극을 받았는지 일부 언론에서는 그나마 괜찮은 뉴스들이 몇 개씩 나오게 된다.
4월 26일 토요일, 해피아와 유병언 일가 정조준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일부 언론에서도 각종 의혹들이 터져나오면서, 검찰은 본격적으로 해운업계로 칼끝을 겨누게 된다. 그러자 선사들의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이 사임하고, 선박의 안전검사를 대행하는 '한국선급'의 회장도 사의를 표명한다.
이른바 '해수부 마피아(해피아)'가 위기 의식을 느낀 것인데, 비록 아직까지는 해피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해피아라는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데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도 한창 진행 중이니, 우리 모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끝까지 지켜보도록 하자.
4월 27일 일요일, 국무총리 사퇴와 끝없는 조문 인파
한 주 전인 20일 새벽에는 청와대에 가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을 진도에서 막아섰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고 발생 후 두 번째 일요일 오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의를 표명한다. 그만큼 단 일주일 사이에 국민들의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고, 어떻게든 정부에서도 높은 수위의 액션을 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궂은 날씨 속에서도 합동분향소는 우산을 들고 길게 늘어선 조문객이 끊이질 않았고, 전국적으로 국화 수급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주말 내내 아픔을 나눴다. 아마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침울한 주말이 아니었을까 싶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런 조용한 분위기는 이어질 것이다.
4월 28일 월요일, 한심한 보도통제와 역겨운 시체팔이
악천후로 인해 인양 작업이 소강 상태였던 날, 우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보도통제' 문건과 사설업체 언딘의 첫 시신발견 상황 조작 및 수색 지연에 관련된 뉴스를 보게 된다. 이건 그동안 계속 문제가 돼왔던, '언론이 정확한 보도를 하지 않는 것'과 '구조작업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을 상당 부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당사자들의 부인이 있었지만, 몇몇 언론의 후속보도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었다).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한심한 보도통제와 무정부 상태에서나 가능할 법한 역겨운 시체팔이는 다시 한 번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4월 29일 화요일, 대통령의 사과같지 않은 사과와 유가족의 거부
사고 발생 2주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라는 걸 했단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무회의에서 했다. 그녀는 도대체 왜 직접 국민들을 향해 진솔한 사과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두렵기에, 맨날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자기 아랫것들 데리고 사과를 한답시고 앉아 있을까?
결국 이런 사과같지도 않은 사과는 유가족 대표회의에 의해 거부 당했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박근혜는 항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아무래도 박근혜 주변에는 사과하는 방법 하나 제대로 알려줄 사람이 아예 없는가보다.
4월 30일 수요일, 언딘의 특혜와 청와대의 조작
4월의 마지막 하루는 마치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날 같았다. 언딘만 대형 해양사고 처리 참가 자격이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고, 해경은 한시가 급한 16일과 17일에 언딘 잠수부들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며 해군 최정예요원들의 잠수를 막았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그리고 우리의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합동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할머니를 조작해서 카메라에 등장시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할머니의 정체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관련 동영상을 봐도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연출 의혹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조문하러 가서도 이런 조작질을 해대는 최고 권력기관을 과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박근혜 정권 자체의 존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