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응답하라 1974” 외치는 새누리

“교학사 채택 완패.. 정부여당의 보복?”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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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사실상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교육과정 체계와 교과서 편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겠다”며 “편수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유신 교육 부활시키겠다는 건가

유신독재 때 시작됐다가 1996년에 없어진 국정교과서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얘기다. 이건 꼼수다. 검정제도의 틀은 그대로 남겨 껍데기로 만들어 놓고 실질적으로는 국정제도를 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이 정부여당의 완패로 끝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

유신 독재정권의 국정교과서를 말하려면 ‘국민교육헌장’을 먼저 얘기해야 한다. 1968년부터 모든 교과서 첫머리에 이 ‘헌장’이 등장한다. 재선에 성공해 헌법상 마지막 임기를 시작한 박정희가 ‘장기’ 혹은 ‘종신’ 집권에 대한 야욕을 품고 야심차게 밀어붙인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다.

‘헌장’으로 국민 정신을 개조하려 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에는 개인보다는 국가가, 인권보다는 국가의 권위가,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독재적 요소로 채워져 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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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정신개조 사업이었던 ‘국민교육헌장’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책임과 의무를 다하며...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국민교육헌장 일부)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에 성공한 박정희는 ‘국민교육헌장’ 다음 단계를 실천에 옮긴다. 이른바 ‘교육현장의 유신화’다. ‘종신집권’을 위한 의식화작업의 일환이었다.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연출됐다. 1972년 박정희는 77개 대학총장, 44개 전문대학 학장, 388명의 대학교수, 전국 시도 교육감, 전국 초중고교장, 국회 문공위원까지 총동원해 ‘전국교육자대회’를 개최한다. 참석자수만 8000명. 이들은 박정희를 연호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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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의 유신화 부르짖었던 ‘전국교육자대회’

그날 박정희는 치사에서 ‘한국적 교육’을 강조했다. 서양의 ‘민주교육’을 “향락이나 추구하는 교육”이라고 비하하며 ‘한국적 교육’이라는 말로 포장된 ‘박정희식 교육’을 강요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오붓한 향락 생활이나 추구하는 시민 교육에 힘써 왔다. 이제 외국 교육 형태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데서 탈피해 우리 국가 현실에 알맞는 교육, 우리 교육의 국적을 되찾아야 한다.” (박정희/1972.3. 전국교육자대회에서)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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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전조였다. 이 파쇼적 이벤트 반년 뒤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유신독재 헌법을 공포한다. 교육도 유신 독재의 광풍에 휘말린다. 당시 문교부의 장학 목표는 “유신 과업 수행에 앞장서는 성실하고 능력있는 한국인 육성”이었다.

유신 과업 수행을 위해 문교부가 주도한 사업이 있다. 1974년부터 시작된 국사과목 단일교과서가 등장한다. 이게 유신 국정교과서 체제의 시작이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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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국정교과서, “유신 과업 수행위해” 만든 것

국정교과서는 유신과 5.16을 찬양하고 미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5.16 군사쿠데타를 “4.19가 독재에서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이었다면 5.16은 혼란과 공산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혁명이었으니 5.16은 4.19 정신의 계승이요 발전이었다”라고 미화했다.

유신독재 미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평화적 통일을 조속히 달성하기 위해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5.16은 4.19혁명으로, 유신독재는 ‘평화통일’을 내세워 포장한 것이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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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이 같은 야욕에 분연히 맞선 이들이 있었다. 유신교육의 뿌리였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본격화 된 건 1978년. 송기숙, 백낙청, 성래운 등 해직교수들이 주축이 돼 ‘국민교육헌장’의 비민주적, 비교육적 내용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전국 대학교수들의 참여로 발표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중앙정보부가 낌새를 챈다. 성래운 교수 등 전남대 교수 11명은 방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교육지표’를 ‘AP통신’과 ‘아사히신문’ 등을 통해 국내외에 발표한다.

유신 교육 광풍에 맞선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성 교수가 이토록 서둘렀던 이유는 냄새를 맡은 중정에 의해 송 교수가 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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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직 교수가 중정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1973년 서울대 법대 학생들이 유신 반대 시위에 나서자 중정은 법대 최종길 교수를 연행했고, 최교수는 3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된다.

당시 중정은 “(최 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건물 7층에서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최 교수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간첩자백을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며 최 교수의 죽음은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교육지표’에 서명한 전원이 중정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해직 당했다. 송 교수와 성 교수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다. 이러자 전남대와 조선대에서 대규모 학생시위가 일어났다.

<유신 교육 광풍에 맞섰던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기념비/전남대>ⓒ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유신 교육 광풍에 맞섰던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기념비/전남대>ⓒ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유신 과업화 교육는 독재 정권의 발악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 1년 뒤 유신정권은 박정희가 사살되며 막을 내리게 된다. 국민교육헌장과 유신교육에 정면으로 맞선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은 유신의 마지막을 알리는 서곡 중 하나였다.

‘우리의 교육지표’ 관련자 대부분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이를 기념하는 조형물 제막식이 전남대 인문대 앞에서 열렸다. 기념비에 새겨진 한 구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꼭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다.

“민주주의에 굳건히 바탕을 주지 않은 민족중흥의 구호는 전체주의와 복고주의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민주주의 교육이 선행되지 않은 애국애족 교육은 진정한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민주주의보다 반공만을 앞세운 나라는 다 공산주의 앞에 패배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유신 교육 되살려 ‘성역화’ 하자는 무리들

유신교육과 국정교과서의 시발점이 됐던 1972년의 ‘전국교육자대회’를 기념하고 그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

<교육현장 '유신화'를 부르짖었던 '전국교육자대회' 기념 비석. 성역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교육현장 '유신화'를 부르짖었던 '전국교육자대회' 기념 비석. 성역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우동기 대구시교육감과 지역교육장, 간부 공무원 등 60명은 지난 2일 새해 첫 공식일정으로 ‘전국교육자대회 기념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30여년 방치돼온 비념 비석을 우 교육감 일행이 찾아내 표지판을 설치하고 경계석을 두르는 등 주변 정비를 했다. 그리고 ‘유신 선배들의 교육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국정교과서의 정신적 뿌리나 다름없는 ‘전국교육자대회’ 기념비에 대한 성역화 작업.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부여당의 주장도 여기에 맥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신의 ‘망령’이 교육 현장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신의 혹한에서도 피어난 ‘우리의 교육지표’ 같은 아름다운 꽃이 있지 않은가.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겠다는 정부여당. ‘응답하라 1974’를 외치느라 여념이 없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편집자註] 이 글은 외부 필진(블로거)의 작성 기사로 ‘go발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go발뉴스’는 다양한 블로거와 함께 하는 열린 플랫홈을 표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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