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인권지킴이 출범, 삼성 바꾸는 ‘삼바 운동’ 선언
“삼성을 바꾸자, 삶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삼성을 바꾸기 위해 각계각층이 연대한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이하 인권지킴이)’가 출범했다. 이들은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반대하며 노동 인권 보호를 외치면서 삼성 노동인권선언문도 발표했다.
10일 저녁 7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대강당에서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사회, 종교, 문화 예술, 법조, 학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인권지킴이 출범식을 갖고 향후 삼성에 대한 투쟁에서 함께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상임대표는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가 맡았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와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날 출범식에 참여한 인사들을 보면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만큼 그 해악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출범식에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부 노동자들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비롯해 인권지킴이 지도자문위원으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민주당 은수미, 장하나 의원 등이 참여했으며, 이수호,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들, 노동운동가 하종강 씨,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처음 제안 했던 송경도 시인도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 민주당 의원과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눈에 띄었다.
인권지킴이는 ‘삼성을 바꾸자’는 표어를 줄여 ‘삼바’로 정리했다. 거대 기업 삼성과의 싸움이 힘들고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삼바’(samba)음악처럼 즐겁게 싸워나가겠다는 의미도 담긴 듯 했다.
그래서인지 발족식도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첫 순서는 노들장애인 음악대의 공연이었다. 움직이기 힘든 몸을 하나씩 움직여가며 연주하는 모습에 참석한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들장애인 음악대는 노동가요 작곡가와 트렘펫 연주가로 유명한 김호철 씨와 장애인 차별을 요구하는 현장에서 연주를 해왔다.
노들 장애인 음악대 외에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결성한 ‘콜밴’과 노래패 ‘우리나라’도 무대에 올랐다. 특히 콜밴은 해고노동자들이 작년 대법원으로부터 복직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고난 후 또 다른 싸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자신들이 만들었던 악기를 연주하며 길고 긴 싸움을 흥겹게 해 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이날 출범식을 갖는 삼성인권지킴이들과 닮아 보였다.
송경동 시인의 연대시 낭송도 이어졌다.
송 시인은 지난 10월 자살한 삼성전자서비스 故 최종범 열사의 추모시를 짓기도 했다. 그는 시낭송에 앞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20년전보다 한국 사회는 많이 변했지만 삼성은 그대로다”라며 “삼성의 무노조 신화를 깨는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날 출범식에 맞춰 새로 써온 <삼성 공화국의 새로운 주인들>이란 시에서 “삼성은 어딜 가나 있다”며 “우리세대를 넘어 모든 미래들의 미래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모든 곳에 있기에 삼성은 질문의 바깥에 있고, 법의 울타리 밖에 있고, 국회와 검찰과 행정부 위에 있고, 언론의 눈과 입과 귀 바깥에 있고, 국경 저 너머에 있고, 상상력의 저 건너에 있다”며 삼성에 장악된 한국 사회를 꼬집었다.
또한 송 시인은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에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그에게 바치며, 그가 없으면 우리 모두가 망할 것 같고, 그가 없으면 우리가 모두 할 일이 없어질 것 같고, 그가 없으면 우리가 모두 굶어죽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면서 “스스로 삼성을 만들어 두고, 스스로 삼성을 키워두고, 스스로 삼성을 길러두고, 스스로 삼성에 세뇌되면서, 스스로 삼성을 복제해내며, 다만 삼성은 이건희 일가의 것이라 한다”고 읽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은 그 삼성의 신화가 발가벗겨지는 날, 오늘은 그 삼성의 권위가 무너지는 날, 오늘은 그 삼성의 주인이 누구였는가가 밝혀지는 날, (중략) 오늘은 그 새로운 사회의 주인들이 서는 날”이라며 삼성인권지킴이 발족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도자문위원으로 인권지킴이 참여하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하게 돼 기쁘다”면서도 “민주주의사회에서 헌법상의 권리인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노동인권지킴이 단체를 만들어야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어 “국회에 있는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느낀다”며 “대한민국 사회는 삼성의 변화 없이는 인권도, 노동의 희망도, 복지도, 경제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삼성을 바꿔야야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삼성에 입사하여 승진해서 임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들었다”며 “그 친구들이 삼성에 입사해 임원이 되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삼성의 인권을 지키는 다른 꿈을 꾸도록 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특히 이날 발족식에는 41일째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강남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 투쟁을 하고 있는 故 최종범 씨의 작은 누나인 최종미 씨도 참석했다.
최 씨는 “삼성에 들어가서 좋아했던 동생을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며 “지금 유족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노숙 투쟁을 같이 하며 동생의 뜻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금속노조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해 반올림 활동의 계기를 마련한 故 황유미 씨의 부친인 황상기 씨는 “헌법에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법이 있는데 그 법을 어기게 한다”고 비판하고 “또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 법도 있는데 못 받도록 하고 있다. 삼성은 법을 못 지키게 하는 기업이다”라고 규탄했다.
이날 발족식에서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창립선언문’도 발표됐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위탁과 용역으로 포장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난한 민중의 삶터를 빼앗는 강제철거의 배후, 정치, 관료, 법, 언론, 학계 곳곳에 장학생을 만들고 이들을 부패시키고 공기업 사유화에 앞장서는 중심에 삼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삼성의 바지사장’이라는 조소가 지나치지 않다”며 “침묵으로 가려진 화려한 현상이 진실일 수는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삼성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삼성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삶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며 “탄압과 억압을 박차고 일어나고 있는 삼성노동자들과 함께 할 끈질긴 벗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삼성 노동자들과 함께 이 땅과 국경너머에서 삼성에 짓밟힌 노동인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삼성노동인권지킴이’의 선언한다”고 밝혔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는 이날 발족식 이후에도 11일 오후 7시엔 삼성본관 앞에서 <최종범 열사 추모 인권단체 촛불 문화제>를 열 예정이며 13일과 20일엔 <삼성재벌의 지배구조와 축적방식>이란 주제로 국회의원 회관 등에서 연속 토론회를 개최할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