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종범 씨 아내 “일할 때는 삼성맨, 월급날엔 하청업체 직원”
‘삼성전자서비스 故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전국금속노동자조합은 삼성전자의 위장도급과 건당수수료라는 악질적 임금제도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종범 씨의 죽음에 삼성 측에 책임을 요구했다.
21일 대책위와 금속노조는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서비스는 최종범 씨의 죽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그 책임을 하청업체 바지사장에게 떠넘기고 돈 몇 푼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서비스는 최종범 씨와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노조와의 교섭에 즉각 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최종범 씨가 죽은 지 벌써 3주가 다 됐지만 삼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오늘 사람의 죽음 앞에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은 삼성에게 정식으로 무엇을 잘못 했고, 최씨 유족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정식으로 요구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변호사는 이어 “무노조 경영과 근로기준법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건당수수료와 같은 착취 구조 속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예처럼 부려왔던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생활고로 몰아낸 주범은 협력업체라는 바지사장들이 아니라 그 뒤에서 사주하고 조종하는 삼성전자서비스와 최대주주였던 삼성전자”라고 꼬집고는 “최종범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모든 책임은 삼성전자가 결국 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은 더 이상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 유가족과 대책위와 금속노조의 요구에 응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박성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가 12년 연속 서비스품질지수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런 신화를 있게 한 우리는 여전히 배고파야했고, 안전장비 없이 난간에 매달려 위태롭게 일을 했다”며 “살고 싶어서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박 부지회장은 이어 “삼성은 우리에게 ‘삼성맨’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라, 너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 이야기 해왔지만, 일 시킬 때는 삼성맨이었지만 월급 받을 때는 우리는 그저 협력사 하청업체 직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그는 “최종범 열사는 ‘노동조합 만큼은 지켜달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며 “남은 조합원들의 목표는 하나, 최종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삼성자본에 민주노조 깃발을 사수하고 노동3권을 쟁취해 열사의 한을 푸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양성윤 부위원장은 “43년전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22세의 나이로 목숨을 끊었다. 최종범 씨는 33세다”며 “43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지만 삼성은 올라가 있는 건물만큼이나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탐욕스러운 괴물이 돼 가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씨는 “남편은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일만 했다.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다 새로 산 바지와 구두가 찢어지고 냉장고와 에어컨을 고치다 냉매가 터져 동상과 화상을 달고 살았다”며 “그래도 남편은 언제나 자신이 삼성의 엔지니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천안센터 사장의 막말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올 때 아이의 귀를 막았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너무 비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만 했던 남편이 편히 갈 수 있도록 해달라. 열심히 바보처럼 일만 할 때는 삼성의 가족이고, 노조를 만들고 부당한 것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면 표적감사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날 삼성 측에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최종범 씨에 대한 공개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노조탄압과 표적감사 중단 및 노조활동 보장’, ‘건당 수수료 폐지와 생활임금 보장’ 등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