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외압’ 의심 인사조치로 수사 중단…“정치자금 주장, 웃기는 행태”
전두환씨가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 등에서 받은 비자금 규모가 당초 알려진 2205억원보다 5000억원 가량 더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향후 검찰의 전씨 추징금 환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9일 <세계일보>는 검찰이 1996년 비자금 관련 수사 당시 돈의 사용처를 정치자금으로 판단해 기소유예 처분했고, 전씨가 개인적인 용도로 쓴 2205억원만 뇌물죄로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검찰은 뇌물로 받은 돈을 환수하기 위해 2205억원의 사용처를 캐려 했으나 ‘외압’으로 의심되는 인사조치로 수사를 중단했다.
1996년 ‘5·18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전씨 비자금 수사에 총괄했던 최환 전 서울지검장은 <세계>에 이같이 밝히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전씨 비자금이 얼마나 더 있었냐는 질문에 “(기소된 돈의) 2배 이상”이라고 답했다.
당시 검찰이 전씨 비자금 가운데 뇌물죄로 기소한 금액이 2205억원임을 감안할 경우, 전씨 비자금은 추가로 5000억원 가량 더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전씨 비자금 규모는 7200억원 이상이 된다고 <세계>는 전했다. 그동안 전씨 비자금 규모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있었으나 액수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전 지검장은 5000억원은 정치자금으로 간주해 기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전씨는) 본인을 위해 쓴 게 아니고 정치자금과 정당 운영비, 창당 자금 등으로 썼다고 얘기 했고 (전씨가 직접) 대충 적어가지고 왔다”고 밝혔다.
이어 “(전씨 주장을 받아들여) 통치자금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쓴 돈만) 공소제기했는데 전씨 측이 이제 와서 그 돈(2205억)까지 모두 정치 자금이라고 주장하는 게 웃기는 행태”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6일 전씨를 17년 동안 보좌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공적 용도를 위해 마련한 정치자금을 자녀들에게 빼돌렸다는 의심은 억측이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이야기다.
<세계>에 따르면, 최 전 지검장은 이후 공소 제기된 2205억원에 대한 추징을 염두에 두고 이 돈의 사용처를 추적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최 전 지검장은 “(전씨가 대법원 확정 판결 전) 추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자금을 누가 보관하고 어디에 있나 알아보려고 사용처 조사를 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1997년 1월 말 돌연 내가 서울지검장에서 대검 총무부장으로 갑자기 좌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 당시 ‘추징금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해 달라. 그러면 특별사면을 위해 발벗고 뛰겠다’며 전씨를 설득하려 했고 그렇게 하면 추징금 전액을 간단하게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갑자기 날 쳐버리면서 모든 상황이 물거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 전 지검장은 “내 머릿속에 있었던 (비자금 사용처) 수사를 했으면 대단한 파장이 일었을 것”이라며 “(사용처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차떼기 같은 것도 안 나오고 (정치가 깨끗해 졌을 것이다”고 <세계>에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