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은 안중근 의거일.. 그를 다시 데려오자”
“10.26 그날 안중근의 총구는 누굴 향했나”
그날 안중근은 무엇을 쏘았을까.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두에서 안중근은 침략자 이토를 쏘아서 거꾸러뜨렸다. 미국인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벨기에제 단총(권총) M1900 시리즈를 품에서 꺼내 일곱 발 총성을 울려 삼천리를 넘어 북만주의 가을과 세계 양심과 모든 침략자들의 심장까지를 격동시켰다. 단기필마로 나선 일 중 족속역사 이천년 이래 이에 비할 용맹하고 거룩한 행동은 단호히 없었다. 고작 여섯 자리에 지나지 않는 그 총기번호는 연인 전화번호보다 외기 쉽나니. 총기번호 262336, 무게 625그램, 길이 172밀리미터. 이 숫자는 이 족속 뼈마디의 일부라야 마땅하다.
“안중근, 그가 남긴 1발의 총알이 묻는다”
안중근은 역으로 나아가기 전에 7연발 권총 약실에 1발을 미리 더 넣어두었다. 이토를 제거한 뒤 그는 1발을 더 쏠 수 있었지만 총부리를 거두어들이고 러시아 헌병 장교 미치올클로프에게 권총을 건네주었다. 안중근의 총소리는 그날 거기서 그치고 만 것일까. 살아 있었다면 1945년 8월 15일 이후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1발 남긴 총알은 오늘도 묻고 있다. 이것이 안중근이 후대에게 물려준 가장 통렬하고 뜨거운 유산이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장악한 대한민국 지폐..”
한국 정부에서 만든 지폐 인물은 다들 조선시대 사람뿐이다. 세종 이도, 이순신, 이율곡과 어머니 신씨, 이황 등 모두 중세에 활동한 이들이다. 씨족적으로 말해 한결같이 이씨 집안 인물들이다. 대한민국이 조선을 계승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통해 탄생한 공화정 국가다. 헌법 전문에 명시하고 있듯 3.1운동과 4.19혁명이 그 생동하는 구체다. 임시정부를 포함해서 3.1운동이 곧 대한민국이다.
“안중근과 김구.. 그들이 외면받는 이유는?”
3.1운동은 단지 항일운동만이 아니다. 이는 오늘 한국과 한국인이 있게 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모태이자 고향이요, 근대적 가치가 흘러나오고 있는 거대한 저수지다. 한국 민중은 고종의 죽음을 통해 다시 태어나 곧장 공화정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4.19는 이를 다시금 재창조해낸 위대한 행동, 곧 혁명이었다. 행동 없이 역사는 전진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지폐에는 이들에 대한 초상 하나가 없는 것일까. 안중근은 법적으로 식민지 치하에 살지도 않았고 분단체제 형성에 관련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외면 받는 것일까. 김구는 왜 10만 원 권 지폐에 등재될 뻔했다가 그만 사라지고 만 것일까.
“친일파 대신 독립운동가 청산한 비정한 역사”
다시금 묻노니 항일운동가들은 해방 뒤 어디로 간 것일까. 적어도 40여 년 넘게 항일운동을 전개해오면서도 일제 검거를 피했던 백범 김구 등 활동가들은 해방 정국 3, 4년 사이에 정작 해방된 조국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청산된 것은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었던 것이다.
“유신체제 이어온 신군부.. 마침내 민중이 끝장내”
며칠 전은 10.26이었다. 그날 일제군인 출신으로 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른 최고 권력자가 부하의 총에 쓰러졌다. 유신체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신군부라는 장기 유신체제로 이행되었다. 이를 끝장낸 건 6월시민항쟁이라는 불특정 민중, 시민의 피와 땀과 눈물 젖은 행동이었다.
“10.26은 안중근 의거일.. 그를 다시 데려오자”
10.26은 달리 기억되어야 한다. 그날은 과연 유신 통치자가 죽은 날일 뿐일 것인가. 단호히 말하건대 10.26은 안중근 의거일, 안중근의 날이라야 한다. 그가 남긴 1발 총알을 가슴으로 데우고 격발시키는 한국인의 행동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지폐에 조차 오르지 못하는 안중근을 10.26으로 가져와야 한다.
“오늘 숨쉬는 안중근.. 진실 억압하는 자들 향해야”
1발 남긴 총알은 해방 뒤 친일파들을 조준했어야 했고, 민주주의를 파탄시킨 자들을 향했어야 했고, 세월호 진실을 억압하는 자들을 향해야 한다. 이것이 안중근의 현재성이다. 안중근은 1발 총알과 함께 죽지 않았다. 역사가 기억해야 하는 안중근은 숨쉬는 안중근이다. 행동하는 안중근이다. 한국의 역사적 가을은 10.26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삼천리 가을 하늘이 푸른 건 저 거룩한 안중근의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시작된 지 이제 고작 나흘이 되었다. 안중근이 남긴 총알 1발과 함께, 뉘 심장이 뜨거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