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승무원 재판‧공직자 명예훼손 재판에 대한 단상

“국가기관‧공직자 명예훼손, 법적으로 명백한 피해인가”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첫 재판이 6월 10일에 열리자, 신문·방송과 포털사이트는 이와 관련한 기사들로 온통 도배가 됐다. 그런데 어차피 이 재판은 논란이 많은 ‘살인’ 혐의 적용을 놓고 지루한 법적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으며, 1심 선고만 해도 최소한 3~4개월은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세월호 취재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얼빠진 한국 언론들이 이토록 과도한 기사 찍어내기를 하는 건, 근본적인 전체 시스템의 문제를 그냥 몇몇 개인들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직 법적 판단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특정 국민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말해서 인지 몰라도(해외 언론들이 지적하듯이, 지극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세월호 승무원 재판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살인죄가 적용되어야만 하는 재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정당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지 그저 감정적인 여론재판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또 힘 있는 유병언은 아직 잡지도 못했으면서, 비정규직 승무원들 몇 명 살인죄로 처벌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 살인죄 처벌과 재발방지 효과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한편, 지난 6월 3일에는 세월호 참사 직후 구조 상황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김모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람에 대한 재판이었다. 그런데 이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바로 ‘목포해양경찰청장과 목포해양경찰청 소속 경찰관 등 침몰사고 구조 담당자들’이란다. 한마디로, 세월호 구조 상황과 관련해 국민이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감옥에서 1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해경 간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게 징역 1년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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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사람, 구속 수감된 홍가혜

이렇게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김모씨의 소식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져있던 4월 20일, 경찰에 자진출석해 수감된 홍가혜씨 말이다. 그녀 역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벌써 50일 정도 지났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를 않으니 차츰 잊혀지고 있다. 그냥 ‘해양경찰의 명예를 손상한 혐의로 4월 29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는 얘기만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결국, 김모씨나 홍가혜씨 둘 다 똑같이 해경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구속수감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부분은 ‘허위사실 유포’와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은 다 구속되는가? 아니,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무조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또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게 과연 법적으로 정말 인정되는 개념일까? 지금부터 세월호 승무원 재판보다 이 문제가 우리에게 왜 더 중요한지를 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단순히 허위사실 유포만으로 무조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며칠 전 징역 1년을 선고 받은 김모씨에 대해 이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4월 16일 오후 9시께 스마트폰 2대를 이용해 “현장 책임자가 구조와 시신 수습을 막고 있다”는 카카오톡 대화를 꾸며낸 뒤 이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웹페이지에 게시했다고 한다. 그는 10여 분 만에 게시글을 급히 삭제했지만 이미 인터넷에 큰 파문이 일고 난 후였고, 검찰은 김씨가 목포해양경철청장과 소속 경찰관 등 침몰사고 구조 담당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봤단다.

여기서 “현장 책임자가 구조와 시신 수습을 막고 있다”는 게 참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고, 이 재판의 핵심도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모두 봐왔듯이, 세월호 참사는 그저 ‘인재’라기보다 거의 ‘학살’에 가까웠고, 현장 책임자였던 해경이 해체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4월 16일 세월호 골든타임 때의 구조와 시신수습은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우리는 300명이 넘는 국민이 수장되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생중계로 봐야만 했고, 아마도 이 죄악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업보가 될 것이다.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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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김씨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4월 16일의 구조 활동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해경의 실패가 곧 ‘사고’를 ‘참사’로 키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물론 김씨는 “현장 책임자가 구조와 시신 수습을 막고 있다”는 카카오톡 대화를 가짜로 꾸며냈고, 그것을 유포했다. 분명히 이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허위사실 유포만으로 무조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허위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때론 진실을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며, 이 행위로 인해 피해가 명백해야만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거짓말을 하는 모든 사람이 구속되지는 않는다.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모든 얘기들이 다 사실은 아니고, 또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말이나 글이 허위라고 해서 모두 처벌한다면, 도대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은 사상가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비난이 ‘허위사실 유포’일 것이다. 그들이 한 말 중에는 진짜 허위사실도 있고, 또 위대한 사상도 있다. 이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명백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단순히 허위사실 유포만으로 무조건 법적 처벌을 할 수는 없다. [홍가혜씨의 인터뷰 내용과 마찬가지로, 김씨가 꾸며낸 카카오톡 대화의 내용이 어쩌면 전부 다 ‘허위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법적으로 명백한 피해인가?

앞서 말했듯이, 홍가혜씨와 김씨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구속수감됐다. 한국 언론에서는 그냥 ‘명예훼손’이라고만 표현해서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피고’ 홍가혜씨와 김씨의 상대편인 ‘원고’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나 유족이 절대 아니다. 이 재판에서 명예훼손의 피해자이자 원고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전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해경이다. 참사의 희생자나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과연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했다고 국민이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걸핏하면 국민을 ‘피고’로 만드는 이런 행태는 국민과 정권 간에 어떤 충돌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자, 이쯤에서 지난 5월 12일 청와대가 ‘CBS 노컷뉴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떠올려 보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4월 30일 노컷뉴스의 기사가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대통령 비서실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CBS 노컷뉴스의 반응이 재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는 15일 성명을 발표하면서, 언론으로서 할 일을 했고 오히려 자신들을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명예훼손이라고 말하는데 그 상대편은 할 일을 했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그에 대한 답은, MBC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한국협상단 대표 민동석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정운천의 명예훼손 소송을 대법원이 어떻게 최종 판결 내렸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고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에 관여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그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곧바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헌법재판소의 판단도 이와 같다고 한다). 쉽게 말해, 법적으로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청와대 비서실과 김기춘 비서실장 등은 CBS 노컷뉴스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을까? 한마디로 겁을 좀 주려는 것일 테고, 언론을 길들이려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홍가혜씨나 김씨를 구속수감한 건 이와 다를까? 단언컨대, 전혀 다르지 않다. 모두 똑같이 국가기관이나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진실을 숨기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더러운 술책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거대한 정부의 권력 앞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없이 도대체 어떻게 정권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겠는가? 맨날 정부가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걸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힘 없는 국민은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나?

사진출처=6월 5일 전자신문(상), 6월 3일 오마이뉴스(하)
사진출처=6월 5일 전자신문(상), 6월 3일 오마이뉴스(하)

홍가혜씨와 김씨는 구속수감 됐지만, 권은희와 정미홍은 지금도 활개치고 있다

만약에 내부고발이나 시민들에 의한 자유로운 비판이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가 몇십 년 동안 계속 반복됐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수많은 내부고발이 이어졌을 테고, 다수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내부고발자가 집단의 폭력 앞에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활동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국민을 허위사실 유포자로 처벌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데, 주인이 ‘공인’들에게 뭐라고 하면 명예훼손이라며 소송을 제기한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에서 봤듯이, 언론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얼빠진 언론인들한테는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과연 이런 사회에서 대형 참사가 또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재판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진실을 숨기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인) 명예훼손 재판의 결과가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홍가혜씨나 김씨 개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것보다 이들이 말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사회적으로는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 마찬가지로 세월호 승무원들에게 살인죄가 적용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도대체 구조적으로 어떤 약점이 있길래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가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근본적 물음이다. 언론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현실적으로 안 되니까, 일반 국민들이라도 좀 제대로 정신을 차려야 할 듯싶다.

마지막으로 이 얘기만 하고 끝내자. 김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그의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됐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유가족인 척하는 선동꾼이 있다’는 사실무근의 글을 올렸던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나 ‘추모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일당을 받고 동원됐다’고 한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홍가혜씨는 무려 4월 20일에 전격적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김씨는 이미 징역 1년을 선고받았는데, 권은희와 정미홍은 요즘도 활개치고 있다.

권은희는 새누리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7월 14일 전당대회의 선거관리위원이 됐고, 6월 5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함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정미홍은 5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시장은 시민의 혈세로 동성애 옹호 버스 광고를 게재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고, 6월 2일에는 새누리당 강원도지사 후보 유세현장에 나타나서 지지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일들은 전부 정미홍과 권은희가 세월호 ‘망언’을 한 이후에 한 행동들인데, 도대체 왜 이들은 아직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우리 사회를 휘젓고 다니는가?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1차 조사를 받기는 한 것 같은데,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다.

상대적으로 힘 있는 권은희나 정미홍은 뻔뻔스럽게 아무데나 돌아다니고, 힘없는 일반인인 홍가혜씨나 김씨는 감옥에 가는 게 과연 형평성 있는 법 집행일까? 유병언은 잡지도 못하면서 세월호 승무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시키기 위해 애쓰고, 김씨나 홍가혜씨는 곧바로 잡아들이면서 정미홍이나 권은희는 손도 못 대는 게 대한민국 사법부다. 그런데 또 한국 언론은 세월호 승무원들의 재판 기사는 신문·방송과 포털사이트에 온통 도배를 하는 반면, 권은희나 정미홍의 수사에 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우리가 사는 나라가 바로 이런 곳이다. 법 앞에서 평등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언론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서 자신이 유병언이나 정미홍·권은희보다는 홍가혜씨나 김씨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세월호 승무원 재판보다는 국가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에 관심을 가지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국민리포터 ‘아서정’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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