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잘못된 관행 개혁할 것”.. 사실상 사퇴 거부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증거조작 사건 수사 결과에서 남재준 원장을 무혐의 처리하자 서천호 국가정보원 2차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리했다. 사표가 속전속결로 처리되며, 이번 사건을 서 차장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는 수순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14일 저녁 서 차장은 보도자료를 내고 “대공수사팀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간첩 수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항소심 과정에서 증거 제출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지휘 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곧바로 수리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기다렸다는 듯 사표가 수리되는 과정으로 볼 때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대한 문책 수준을 차관급인 2차장 선에서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서 차장의 사퇴를 알리는 보도자료 내용이나 이후 보인 청와대 반응을 보면,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청와대-국정원-검찰 간 사전 조율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 차장은 보도자료에서 “실무진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한 사안이지만 지휘책임을 진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남 원장 등 ‘윗선’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 역시 “(서 차장 사표 수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는 지난달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차장의 사표 수리가 드러난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라는 논리다.
이로써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 ‘서 차장의 사퇴’ → ‘사표 수리’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공개발언을 통해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통해 사건을 최종 마무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서 차장 못지않게 증거조작 사건의 지휘 감독과 도의적 책임이 있는 남 원장은 부하 직원 뒤에 숨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증거조작을 사전에는 몰랐다 해도 불거진 이후에는 국정원의 거짓 해명과 책임 회피 과정을 지휘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 원장의 이런 태도 뒤에는 박 대통령이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이른바 ‘종북 세력’과 ‘안보’에 대한 남 원장과 박 대통령의 교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간첩 조작 사건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 등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게 여권 내부의 대체적인 평가다.
서 차장도 사퇴를 밝히며 “이 엄중한 시기에 국정원이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된다”, “국정원은 더 이상 흔들림 없이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등을 거듭 언급하며, 남재준 원장 등 윗선에 대한 추가 문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조선일보>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5일 ‘‘증거 조작’ 사건, 국정원·검찰이 민변에 完敗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유 씨의 변호를 맡은) 민변은 북한을 두둔하는 행동이 잦았고 공안 수사마다 찾아다니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곤 했다”며 “간첩 혐의자와 그의 변호인단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대공 수사 기능을 해체시키다시피 한 것”이라 평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24시간, 365일 적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다. 북이 보낸 간첩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정원과 검찰이 앞으로 간첩 수사를 제대로 해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느냐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편 남재준 원장은 15일 오전 10시 국정원 본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증거서류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정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남 원장은 이어 “국정원은 이를 계기로 그동안의 수사 관행을 점검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사실상 자신을 향한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