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신뢰’가 브랜드라더니.. ‘속고 속이는 정치’
18대 총선 즈음 박근혜계는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자신의 계파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로 분해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박근혜 의원. 친이명박계로 쏠린 공천결과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이러더니
친이계가 주축이 된 공천심사위원회가 친박인사들을 밀쳐낸 건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무원칙의 결정체였다”고 입을 연 박근혜 의원은 국민을 앞세워 친이계를 공격했다. “국민이 (한나라당에게) 준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어리석은 공천”이라며 이런 얘기를 했다.
“공천과 관련해 믿고 맡겨 달라는 당 대표의 말을 믿었다. 결국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속임을 당했다며 자신을 속인 이들을 강하게 비난했던 박 의원. 2012년 제18대 대통령 후보가 된다. 진보진영 정책까지 자신의 정책으로 채용한 박 후보는 표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공약이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문재인-안철수 등 야당 후보가 내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그것이었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 선언하며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야권 후보들보다 늦게 ‘기초 무공천 공약’을 제시했다. 박 후보는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공약의 수위를 높였다. 안철수-문재인 후보는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공약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한술 더 떠 기초의원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공천까지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을 한달 앞둔 2012년 11월 20일 박근혜 후보는 “기초의원·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기초의회와 기초단체가 중앙정치의 간섭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지방정치를 펼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자신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며 기초 공천 폐지는 절대 깰 수 없는 국민과의 약속임을 분명히 했다.
당선 뒤 찾아온 첫 지방선거.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무공천 공약을 폐기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공천 폐지는 “정당정치의 근간을 훼손시킬 뿐 아니라 위헌 소지도 있다”며 “공천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외형상으로는 대통령이 한 약속을 여당이 나서 깬 것처럼 보인다.
권력 쥐면 ‘속이는 자’ 되나
당이 총대를 맨 것 뿐이다. 애당초 무공천은 대통령의 약속이었지 당의 약속이 아니었다. 약속을 깰 권한은 오직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이 뭐라 했든지 결국 박 대통령이 약속을 깬 거다.
‘찬밥신세’일 때는 “나도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리던 그가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자 남을 속이는 입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힘이 없을 때는 속임을 당하다가 권력을 쥐었을 때는 속이는 자가 되는 게 정치란 말인가.
속고 속이는 ‘이전투구 정치’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약속과 신뢰’를 자신의 브랜드로 각인시켜 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니 ‘속고 속이는 정치’가 뭔지 그 진수를 보여준다. 엄청난 아이러니다.
새누리당은 공천을 강행을,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 원칙을 재확인했다. 민주선거제 도입 이후 두 가지 규칙으로 선거가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 선거를 총괄관리해야 하는 대통령이 제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깼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다.
초유의 ‘두 가지 룰 선거’, 대통령이 국민 속인 결과
공천과 무공천 두 가지 룰이 동시에 적용돼 치러지는 선거.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결과다. 당선증을 받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거나 다름없다.
속은 자는 분통을 터뜨리는데 속인 자는 등 돌리고 침묵한다. 속이는 짓이 나쁜 것이고 수치스러운 행동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는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미안하다’라는 말이라도 해야 한다. 당 원내대표의 입을 빌어 몇마디 사과하는 게 고작이다. 비열한 사과다.
여당이 공천을 강행할 경우 야권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거론된다. 지방선거 보이콧이 그 중 하나다. 선거 자체를 거부해 ‘공약실천 대 공약파기’ 프레임을 선명하게 설정한다면 국회의원 재보선 등 향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어 특별법 도입으로 지방선거 재실시를 관철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주장이다.
하지만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선거를 보이콧하는 건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으로서 해서는 안 될 파괴적 선택을 했다는 여론이 조성된다면 야당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혼란 불가피 국민이 봉? 속인 자가 나서라
두 번째 대안으로 거론되는 건 시민후보를 내자는 구상이다. 풀뿌리 시민정당을 만들어 야당이 행사하는 공천권을 시민단체에게 넘겨줘 여기에서 후보를 선정하자는 아이디어다. 야당의 역할은 후보 단일화와 측면 지원 정도일 것이다.
이 방법은 공약파기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여당에게 궁지에서 빠져나갈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이 여론을 총동원해 시민후보가 아니라 사실상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라고 맹공을 퍼부을 게 뻔하다. 무공천 실천하겠더니 결국 뒤로는 공천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공세를 편다면 야당이 도리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대로라면 엄청난 혼란 속에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속고 속이는 정치판’ 때문에 국민만 곤혹을 치러야 한다. 국민이 봉인가. 속인 자가 나서라. 속인 것을 사과하고 이제라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4.7 ‘데일리 고발뉴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고발리포트 (6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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