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암덩어리 쳐부수겠다’는 朴, 이율배반의 극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한 박 대통령. 공공부문 혁신과 규제개혁에 승부를 걸고 있다. 3개년 계획에 들어 있는 대부분 내용은 기업 등 민간부문의 협조가 우선 돼야 하지만 공공기관 혁신과 규제개혁은 정부의 주도로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공기업-규제 개혁, 박근혜 “암덩어리, 쳐부술 원수”
최근 들어 공공기업 혁신과 규제개혁에 대한 언급 횟수가 부쩍 많아졌고, 박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크게 높아졌다. ‘막가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다.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에 비유하더니 3개년 계획 발표 직후 ‘천추의 한’ ‘진돗개 정신’ 등으로 수위를 끌어올리다가 며칠 전에는 ‘암덩어리’ ‘쳐부술 원수’라는 표현을 쓰며 목청을 높였다.
공기업 비효율과 방만경영, 불필요한 규제 등이 발전을 저해하고 경제를 망가뜨리는 암덩어리이며, 따라서 반드시 ‘쳐부셔야 할 대상’이라는 얘기다.
노조를 보는 시각도 거칠고 사납다. 박 대통령이 공기업 노조를 집단이기주의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노조 혁파를 벼르고 있다는 게 곳곳에서 관찰된다. 노조가 파업을 결의할 움직임이 감지되면 검찰과 경찰은 즉각 공안회의를 연다. 박정희 독재 시절에도 없던 ‘공안경제’가 등장한 것이다.
‘친박 낙하산’ 하늘 까맣게 투하
그러면서 공공기관에 하늘 까맣도록 낙하산을 투하한다.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친박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개혁과 낙하산. 서로 상반되는 단어다. 반개혁을 자행하면서 개혁을 부르짖다니 이율배반도 유분수다.
경영진은 구태와 악습 그대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직원과 노조에게만 개혁을 강요한다. 낙하산 실태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심각하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실이 ‘공공기관 친박 인명사전 1집’을 펴냈다. 2013년부터 선임된 공공기관 임원현황을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자료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114명의 친박 인사가 84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이사로 취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새누리당 출신이 55명(48.2%)로 가장 많고 대선 캠프 출신이 40명, 대선지지 활동단체 출신도 32명(일부 중복 포함)이나 됐다. 기관장 45명, 감사 15명, 이사(사외이사 포함) 57명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친박 인명사전’ 들여다보니
LH공사, 한전, 도로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철도공사, 석유공사, 농어촌공사, 예금보험공사, 수사원공사, 지역난방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부채 상위 25개 공공기관 대부분이 친박 인사에 의해 장악된 상태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출신 공공기관 임직원은 총 16명. 이중 김병호, 김선동, 김성회, 김학송, 손범규 등 11명이 기관장 자리를 꿰찼다. 대선캠프 출신 17명, 대선 지지단체 출신 16명, 인수위 참여 인사 8명도 기관장에 이름을 올렸다.
부적절한 처신이나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도 다수 포함됐다.
용산참사 철거민 농성 폭력 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한국항공공사 사장, 보궐선거 공천 포기 대가로 사장 자리를 얻었다고 알려진 김성회 지역난방공사 사장,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나자마자 한 자리 차지한 김행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파업사태 한복판에서 지역구 위원장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던 최연혜 코레일 사장, 노무현 전 대통령 비방 글을 올려 문제가 됐던 안홍철 투자공사 사장 등이 그들이다.
“낙하산 새정부에서 없을 것”... 대통령의 사기극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거나 다름없다. 대선 때와 인수위 당시 박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 사람 사기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정부에서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공공기관 개혁 실패는 정부가 원칙을 지키지 못한 이유”라며 낙하산 인사가 개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자신도 낙하산 인사가 개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 비효율과 방만 경영을 ‘암덩어리’ ‘쳐부술 원수’에 비유하며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개혁 실패를 자초할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니. 이런 식이라면 대통령이 말하는 개혁은 공기업 구성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서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철저하게 한쪽으로 치우친 정권의 아바타가 공공기관에 투입되고 있다. 전문성과 능력 검증은 이뤄지지 않는다. 실상이 이런데도 방만 경영 운운하며 개혁을 주장한다.
‘친박 낙하산’이 더 큰 ‘암덩어리’
노조와 구성원들에게만 개혁의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반발만 불어올 뿐이다. 사돈 남말 하는 식의 저질 쇼를 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을 알기나 하나.
개혁은 반발을 불러온다. 때문에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 주체들이 먼저 반발을 설득해 낼 수 있는 수준의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친박 낙하산이 하늘 까맣게 내려오는데 개혁을 외치는 대통령의 말에 귀 기울일 사람 어디 있겠나.
방만경영과 비효율을 ‘암덩어리’라고 치자. 그렇다면 ‘낙하산 인사’도 결코 그에 못지 않는 ‘암덩어리’다. 더 큰 암덩어리일 수 있다.
공기업에 ‘암덩어리’를 투하하면서 ‘공기업 암덩어리 쳐부수겠다’는 박 대통령. 이율배반의 극치다. (☞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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