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조 공화국’ 전락.. “특검으로 오명 씻어야”
해외에 장기 체류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한국 대사관에 다수의 영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통상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 공관에 파견 나온 공무원을 영사라고 부르지만, 외교부 소속이 아닌 영사도 다수다.
국정원 영사에게 영사확인서 작성 권한, 이게 화근
이들 가운데 국정원 소속 영사들도 있다. 외교부 지휘계통에서 벗어나 활동한다. 호칭만 영사일 뿐이다.
영사는 주재국 정부가 발행한 문서에 대해 ‘확인’과 ‘공증’을 해줄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영사확인’은 주재국 정부 문서가 적법하게 발행됐는지, 문서의 서명이나 날인이 위조된 건 아닌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영사공증’은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영사 앞에서 ‘자신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증 받은 것을 말한다. ‘영사확인’이나 ‘영사공증’ 모두 일정한 자격을 갖춘 영사에게 그 권한이 주어진다.
유우성씨 간첩 조작 사건에도 ‘영사확인서’와 ‘영사공증’이 등장한다. 이 문서들은 검찰에 의해 재판부에 제출돼 유씨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문서 모두 중국정부에 의해 ‘가짜’인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된 것이다.
위조 서류에 가짜 확인서, 그리고 공증까지
화룡시 공안국이 발행한 문서와 삼합세관이 발급해 주었다는 문서에는 선양 총영사관의 영사확인서와 영사공증이 첨부돼 있다. 영사확인서는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이인철 영사가, 영사공증에는 유정희 영사가 서명한 것으로 돼 있다.
이인철 영사가 중국당국이 발행한 문서가 맞다는 확인서를 만든 다음, 유 영사에게 이 확인서가 이 영사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공증 받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영사가 작성했다는 ‘영사확인서’다. 위조된 것임을 알고도 확인서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태다.
이 영사 스스로 위조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처음에는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지만 본부(내곡동 국정원) 측의 반복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가짜 확인서를 만들어 줬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짜 확인서’에 공증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진 유 영사도 “본인이 서명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공증영사’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증이 이뤄졌다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다. 공증 또한 ‘가짜’라는 얘기다.
‘영사증명’, 간첩 조작위해 휘두른 ‘전가의 보도’
군사독재 시절 자행됐던 해외 간첩 조작사건의 경우와 똑같은 수법이다. 과거에는 ‘영사확인’을 ‘영사증명’이라고 불렀다. 해외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사건의 진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이미 거짓으로 꾸며진 공소장에 혐의사실을 짜 맞출 목적으로 ‘영사증명’이 활용된 경우가 허다했다.
안기부 등 정보기관은 거짓을 사실처럼 꾸미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확인된 것처럼 포장하는데 ‘영사증명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변호인이라 할지라도 외국에서 일어난 세세한 정황까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수법이다.
공소사실을 짜깁기 하면서 ‘해외 혐의’를 반드시 끼워넣는다. 이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해외 공관에 ‘맞춤형 증명서’를 요구하고, 검찰이 이 ‘증명서’를 증거로 제출하면 재판부는 선뜻 증거로 채택한다.
수십년 전 수법 먹힐 거라는 판단, 큰 착오였다
법적 효력도 없는 증명서지만 결정적 증거로 작용해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물론 ‘맞춤형 증명서’를 만드는 건 해외공관에 파견 나가 있던 안기부 소속 영사 몫이었다.
이런 패턴이 유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오래 된 수법을 재탕한 셈이다. 수십년 전 꼼수가 먹힐거라고 판단한 국정원의 패착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지금같이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었고 해외 여행 또한 제약이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글로벌과 정보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유씨 변호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낸 것도 사진을 GPS가 장착된 스마트폰으로 찍었기에 가능했다. 화룡시와 삼합세관이 발급한 문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알아 낸 것도 발 빠르게 현지로 직접 달려간 변호인들 덕분이었다.
‘프레시안’ 폭로, “영사증명서에 8살 짜리가 조총련 조직 간부”
‘프레시안’이 재미있는 기사를 냈다. 1980년대 있었던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서다. 안기부는 1986년 4월 작성된 ‘영사증명서’를 토대로 재일교포 김양기씨를 간첩이라고 주장한다. ‘영사증명서’의 김씨 경력에는 “1952년 12월~1958까지 조총련 산하 기관 조선청년동맹 산따마본부 선전부장”을 지낸 것으로 기술돼 있었다.
김씨는 1944년 생. 8살 때 조총련 조직 간부를 지냈다는 얘기가 된다. 재판부가 문제를 제기하자 안기부는 “타자 오타 등에 기인한 잘못”이라며 ‘영사증명 내용 정정확인서’를 영사공증을 해 다시 제출했다. 정보기관에 의해 ‘영사증명서’가 얼마나 남발됐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양 총영사관의 국정원 영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문서. 여기에 이번 간첩조작 사건의 모든 게 들어있다.
‘위조공화국’ 오명 씻으려면 관련법 손보고 특검해야
어떻게 가짜 문서를 작성했는지, 누구의 지시에 의해 그리 했는지, 이 영사를 도왔다는 협력자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했는지, 영사공증서에 유 영사가 정말 서명했는지 등을 확인하면 모든 게 드러날 수 있다.
수십년 전 수법을 그대로 써먹으려다 들통난 국정원. 이번 기회에 ‘영사확인서’와 ‘영사공증’ 등을 포함한 재외공관공증법을 대폭 손봐야 할 것이다.
위조된 문서에 가짜 확인서를 붙이고 엉터리 공증을 해서 만든 서류가 검찰에 의해 법원에 제출됐다. 검찰이 위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국정원과 검찰, 이들을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한 정부에 의해 대한민국이 ‘위조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범’에 해당하는 검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 특검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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