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안타깝다” 그럼 강기훈은?

“권력의 패악질로 망가진 한 시민의 삶, 정부가 풀어줘야”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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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에 대해 “체육계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 때문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발언은 소치 동계올림픽과 오버랩되며 상당한 반응을 불러 왔다.

“안현수 안타깝다” 그때 법원은 ‘강기훈 무죄’ 판결

국내에서 선수 생활이 어렵자 귀화해 러시아에게 메달을 안겨준 안현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표현한 박근혜 대통령. 진심일까 아니면 ‘정치적 쇼’일까?

박 대통령이 안현수 선수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던 바로 그때다. 법원은 유서를 대필해 주고 자살을 종용했다는 누명을 쓴 채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강기훈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국내에서 꿈을 펼치지 못한 안현수 선수”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박 대통령. 정말 진심이라면 국가권력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버린 강기훈씨에 대해서는 더한 안타까움을 표해야 한다. ‘한국판 드레퓌스’로 알려진 강씨는 수년간 이렇게 절규해왔다.

“(암 투병으로) 시간이 별로 없으니 재심 진행을 서둘러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의 진솔한 사과입니다.”

권력에 의해 조작됐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백골단(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노태우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서강대에서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정권은 당황했다. 노태우가 아니라 ‘물태우’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노태우 또한 12.12반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앉아서 당할 리 있겠는가.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결국 ‘종북 카드’를 빼든다. 연이은 분신 자살을 ‘북한 배후설’과 연결지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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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검찰은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 분신한 김기설씨 유서가 본인이 쓴 게 아니라 누군가 대필한 거라고 주장하며 “김기설 유서의 필체와 강기훈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의 진술을 토대로 강기훈씨에게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3년 형을 선고했다.

선량한 시민의 삶보다 권력의 체통이 먼저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이었던 김형영은 허위감정을 해준 혐의로 수차례 구속된 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매번 무죄가 선고됐다. 정권과의 결탁이 없이 가능했을까.

당시 언론도 ‘김형영의 진술’을 바탕으로 강기훈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에 물음표를 던졌다. ‘동아일보’는 “국민들이 사법부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을지 의문”이라면서도 법원이 ‘허위감정사’의 증언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과수 감정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사법제도 전반에 미칠 영향과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다.” (동아/1992.7.25)

선량한 시민을 억울하게 옥살이 시켜서라도 사법부의 체통과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황당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강기훈씨는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의 권고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강씨의 재심청구에 반발해 대법에 항고하는 등 3년 동안 재심결정을 막았다. 그러다 결국 13일 무죄 판결이 난 것이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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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옥살이 시켰던 그때 그 검사들

강씨를 무고하게 옥에 가뒀던 그때 그 검사들. 그들은 누구이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사에 관여했던 인물들 모두 박근혜 정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 시민의 행복을 짓밟고도 승승장구해 왔다는 얘기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유신의 남자’로 잘 알려진 김기춘. 현재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정권의 제2인자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수사책임자는 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 대법관을 거쳐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지냈다. 수석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 지난해 7월 박근혜 정권에 의해 대검 산하 사건평정위원장으로 위촉됐다.

수사 검사였던 남기춘. 서울서부지검 검사장 출신으로 대선 직전 박 대통령에 의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클린정치위원장을 지냈던 ‘친박 인사’다. 또 다른 수사 검사였던 곽상도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강기훈씨는 얼마전 언론 인터뷰에서 “신상규·남기춘·곽상도 등 검사들이 조사과정에서 욕을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며 당시 인권 유린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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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프랑스에도 ‘강기훈 사건’과 흡사한 사례가 있었다. ‘드레퓌스 사건’이 그것이다. 1894년 프랑스 군부는 유대인이었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에게 간첩혐의를 물어 종신형을 선고한다. 진짜 간첩은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군부는 사건을 덮으려 했다.

곤경에 빠진 군부가 계략을 세운다. 드레퓌스의 재심요구를 “군부와 프랑스를 전복시키려는 유대인 국제조직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곡절 끝에 재심이 열렸고, 드레퓌스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프랑스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수차례 용서를 구하며 ‘불의의 역사’를 바로 잡는 데 정성을 쏟았다. 1995년 군부의 무뤼 장군은 ‘드레퓌스 사건’이 “반유대주의 정서에 편승해 무고한 군인을 간첩으로 몰아세운 군사적 음모”라고 고백했다. 1998년 1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드레퓌스와 이 사건을 고발한 에밀 졸라 가족에게 공식 사과 서한을 전달했다.

ⓒ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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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과 ‘강기훈 사건’. 둘 다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다. 하지만 권력이 이 ‘무죄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완연히 다르다.

‘안현수 삶’과 ‘강기훈 삶’ 모두 귀한 것, 정부 강씨에게 사과해야

프랑스 정부는 피해자 측에 수차례 정중하게 사과를 했지만, 사건을 조작해 강기훈씨를 감옥에 보냈던 그때 그 검사들은 여전이 입을 닫은 채 현 정권과 줄을 대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 운동선수의 ‘행복’을 앗아갔다고 안타까워하는 박 대통령. 눈을 돌려 자신의 주변을 살피기 바란다. 멀쩡한 시민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옥살이를 시킨 그 검사들이 여전히 청와대 주변에 있다. ‘강기훈의 삶’도 ‘안현수의 삶’만큼 가치있고 귀한 것 아닌가.

권력의 패악질에 의해 삶이 압살당한 한 시민의 억울함을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당시 수사검사들은 강기훈씨에게 무릎 꿇어야 하고, 박 대통령은 정부를 대표해 사과 서한이라도 보내야 마땅하다.

안현수의 귀화보다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한 시민의 억울함을 더 안타까워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사과하지 못한다면 '안현수 발언’은 진심이 없는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 될 것이다. (☞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사람과 세상 사이’ 블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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