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측 “의도적 왜곡, 법적 조치 진행 중”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RO회합 녹취록’에 270여 군데의 오류가 발견된 것과 관련, 해당 녹취록을 최초 입수해 전문 보도한 공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한국일보>기자들과 이를 수여한 한국기자협회가 아무런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아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3일 이석기 의원 변호인단이 한 달 가까이 진행 중인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한국일보에 보도됐던 녹취록과 거의 일치하는 1차 녹취록 가운데 234곳(5월 12일 회합), 38곳(5월 10일 회합) 등 모두 272곳을 수정해 재판부에 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한국일보가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4일까지 공개한 녹취록 발췌본과 전문상 등장하는 이석기 의원의 표현이 정반대로 쓰이거나 단순 오타 이상의 오류가 여럿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3일 이석기 변호인에 따르면 국정원 수정본에는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는 말이 한국일보 녹취록엔 ‘전쟁을 준비하자’로 둔갑됐다(한국일보 9월 2일 녹취록).
또한 ‘정세에 걸맞는 선전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선전’이 성전으로 뒤바뀌어 문맥과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됐다. 이밖에도 ‘결정을 내보내자’는 발언은 ‘결전을 이루자’로, ‘분단시대에 분단을 무너뜨리는 종북세력’에서 ‘무너뜨러는’이라는 표현이 한국일보 녹취록에서는 ‘퍼뜨리는’으로 잘못 쓰였다.
특히 “한편으로는 이 전쟁 반대투쟁을 호소하고”라는 말이 한국일보 녹취록에서 “한편으로는 이 전쟁에 관한 주제를 호소하고”로 완전히 반대되는 표현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전쟁을 준비하자’는 표현의 경우 한국일보가 녹취록을 입수했다면서 발췌록만 공개했던 지난 8월 30일자 1면의 머리기사 제목이기도 하다. 잘못 쓰인 대목이 대문짝만하게 1면 머리기사로 사용된 것.
한국일보의 이 같은 녹취록에 대해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9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한 것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석기 의원의 공동변호인단의 한 변호사는 3일 <미디어오늘>에 “발언한 당사자가 있는데도 한국일보는 확인조차 없이 녹취록 보도를 했다”며 “‘전쟁을 준비하자’는 잘못된 보도(기사제목포함)내용과 ‘전쟁반대투쟁’ 발언을 엉뚱하게 둔갑시킨 것은 결정적이자 의도적인 왜곡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특종에 눈이 먼 보도태도”라며 “그것이 몰고 올 파장과 심각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것이 큰 문제로, 현재 법적 조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기자협회장 출신의 정일용 연합뉴스 광주총국장도 이날 <미디어오늘>에 “기자입장에선 입수했을 때 당장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당사자가 알려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한국일보의 녹취록 공개가 확실한 증거가 돼 버렸으며 한국일보 기자들은 상까지 받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녹취록 내용이 정반대로 표현된 것도 발견 돼 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국장은 “차분하게 사태가 정리한 뒤에 줘도 될 것을 당사자는 죽네 사네하고 싸우고 있는데, 기자상이 부여됐다는 것은 이제 기자상 자체의 권위에도 흠집이 가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정 국장은 “한국일보 스스로도 잘못된 대목에 대해 시인하고 경위를 해명하고, 상도 재고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기자상 심사위원단 대변인은 “아직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없는 상태이나, 심사 당시에도 기사의 진실성에 결정적 하자가 생긴다거나 기사 가치의 문제, 녹취록 조작 문제 등 결정적 사정변화가 있을 때 재논의하기로 했으며 한국일보 스스로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반납할 수 있다고 전달했었다”며 “보도된 녹취록의 많은 곳이 수정됐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긴 하지만 아직은 사회적 파장과 기자의 취재노력 등의 수상 선정기준을 뒤집을 정도라는 문제제기나 ‘수상을 번복해야 한다’는 말이 심사위원단 내에서도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오류가 어떤 형태와 경위로 발생했는지 아직 잘 파악이 안 된 만큼 좀 더 규명되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상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이 대변인은 “통합진보당 등 당사자 입장에서 그런 문제제기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엄정한 원칙과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고 <미디어오늘>에 말했다.
이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면서도 핵심적인 오류에 대한 언론사의 책임문제에 대해 “국정원이 갖고 있는 것을 그대로 쓴 것일 뿐”이라고 <미디어오늘>에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