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타살’ 결론…쏟아진 눈물과 탄식

이정빈 교수 “외압 없었다”…장호권 “朴이 해결해야”

ⓒ go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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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골절과 엉덩이뼈 골절이 동시에 추락에 의해 생겼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머리가 먼저 (외부) 가격을 받고 추락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약사봉 지면에 붙어서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 중 한 명인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지난 1975년 8월 서거 이후 38년간 끊임없는 논란과 의혹에 휩싸였던 고 장준하 선생의 사인(死因)이 사실상 ‘타살’로 결론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포천 약사봉 등반 도중 ‘실족사’라는 당시 발표결과를 뒤엎는 것이기도 했다.

약 4개월간 진행된 장준하 선생의 유해 정밀감식 결과가 26일 오전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대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발표됐다. 장 선생의 유해는 지난해 8월 이장과정에서 원형 모형의 두개골 함몰 골절이 발견돼 타살의혹이 증폭된 바 있다.

당시 유족과 장준하기념사업회 측은 정부에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후 국대위와 민주통합당은 공동으로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장 선생의 유해는 지난해 12월 서울대 의대로 옮겨져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장준하 선생, 몸소 진실 밝히시러 지상에 나오셨다”

보고대회에는 장 선생의 큰아들인 장호권 <사상계> 대표 등 유족과 이부영 상임 공동대표를 비롯한 장준하선생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이하 국대위) 관계자들, 장 선생의 유골을 정밀감식한 이정빈 교수 등이 참석했다.

민주통합당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측 유기홍 의원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은 다소 늦게 도착한 탓에 기자들 사이에 앉아 감식결과를 지켜봤다. 지난 23일 열린 추모전시회 개막행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취재진의 모습은 이번 발표에 대한 세간의 큰 관심을 입증했다.

인사말에 나선 이부영 공동대표는 “장준하 선생께서 37년 동안 기다리시다가 더 기다리시지 못하고 몸소 진실을 밝히시러 다시 지상으로 나오셨다”며 “장준하 선생께서 암살자들과 그 방조자들에게 ‘봐라! 너희들이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회개하라,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죽음 가운데서 부활시켜 영원히 말하는 자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죽은 장준하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밝혀 바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씨알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인용하며 “장 선생님 죽음의 진실규명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한느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 ⓒ go발뉴스
고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한느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 ⓒ go발뉴스
이 공동대표의 인사말과 유기홍 의원의 경과보고에 이어 이정빈 교수가 감식결과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르자 참석자들과 취재진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의 유해에서 △출혈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점 △찰과상이 별로 없는 점 △어깨부분에 별다른 손상이 없는 점 △함몰된 오른쪽 두개골의 반대편인 왼쪽 안와(안구 주위 뼈)가 깨끗하다는 점 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 선생의 두개골에 외부 가격이 가해지고 이를 통해 목뼈가 부러져 즉사했을 경우,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사망 이후 추락해도 출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었다. 높은 곳에서 추락해 두개골이 파열됐다면 어깨뼈에도 이상이 발견돼야 하는데 장 선생의 어깨뼈는 ‘멀쩡’했다는 것도 의문점이었다.

아울러, 장 선생의 서거 장소로 알려진 포천 약사봉 계곡의 지형과 높이, 각도 등을 감안하면 미끄러져 실족했을 경우 지면에 부딪혀 시신에서 다량의 찰과상이 발견돼야 하는데 장 선생의 유해에서는 찰과상이 별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아령이나 큰 돌 같은 물체를 ‘가격 물체’로 추정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된 ‘독극물 투여여부’에 대해서는 “검사를 하지 않았다”며 “(독극물 투여 후) 금방 사망했다면 독극물은 연 조직에만 남아있지 뼈까지는 침투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정빈 교수 “내 일인데 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정치적”

이날 감식결과 발표를 시작하면서 이 교수가 장 선생의 유골에 대한 유전자 친자감정 결과 장호권 대표의 부친일 확률이 99.9%라고 말하자 일부 참석자들이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발표가 계속 이어질 수록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졌다.

슬라이드를 통한 설명이 조금 미진하다 싶었던지 이 교수는 즉석에서 두개골 모형과 ‘뽀로로 인형’을 이용해 보다 자세한 설명에 나서기도 했다. 일견 웃음이 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이를 보고 웃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발표 도중 장 선생의 유해와 시신이 담긴 사진이 슬라이드에 비쳐지자 곳곳에서 짧은 탄식과 한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이날 발표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 나선 이정빈 교수는 ‘정치적 외압여부’를 묻는 질문에 “(감식을 진행하면서) 정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일 이외의 요소가 틈입되서는 안된다고 본다”며 “이번 일에서 압력이 들어온 것은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국대위에서 (감식을) 의뢰받았을 때 제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해야 할 일이고 (내) 일이 그 일인데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정치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의 대답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장호권 대표는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결과발표를 지켜봤다. 38년의 세월동안 그 누구보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살았을 장 대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듯 이따금씩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고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발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장호권 <사상계> 대표 ⓒ go발뉴스
고 장준하 선생 유해 정밀감식 결과 발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장호권 <사상계> 대표 ⓒ go발뉴스
유족인사를 위해 연단에 선 장 대표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는 “아버님의 억울한 사인에 대해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다. 정말 오래 기다렸다”며 “이제 어느정도에 일을 마친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대표는 “아버님의 명예회복과 이 나라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해서 이번에 감식을 하게됐다”며 “다시는 이 나라에서 이같은 피해를 입는 백성이 나오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아버님의 관을 두 번씩 여는 죄를 지으면서도 (감식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이어가던 장 대표는 “이제 과학적인 검시가 끝났고 (장 선생의 사인은) 타살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알게됐다. 비록 박정희와 연결돼 있지만 남은 것은 박근혜가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유기홍 의원은 이날 보고대회가 끝난 후 ‘go발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이제 (장 선생의 사인은) 타실임이 명백하게 밝혀진 이상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회피하거나 뒤로 물러나지 말라”며 “박근혜 정부는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유 의원은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세우고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이라며 “과연 누가 타살을 지시했고 타살을 직접 실행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이제는 국민들이 알아야 하고 역사 앞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될 시점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장 선생의 유해는 30일 서울광장 분향소에서의 발인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의 노제를 거쳐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장준하 공원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장 선생의 분향소는 28일 정오부터 30일 오전 9시까지 서울광장에 마련돼 일반 시민들의 조문을 받는다. 29일에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추모문화제가 개최된다. 장 선생의 ‘불꽃같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추모전시회는 지난 23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시작됐으며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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