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 인정해도 ‘늑장-회피성 구조’ 의혹 여전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사고 발생과 구조요청 시각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리지만 정부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당일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그래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게 있다. 늑장 구조와 구조 회피가 그것이다.
정부 발표 그대로 인정해도 ‘늑장-회피성 구조’ 의혹 여전
늑장 구조와 소극적인 구조 태도가 화를 키운 사건이다. 최대한 양보해 정부의 해명을 100% 사실로 받아들이겠다. 이를 토대로 사고 당일 상황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의혹의 핵심을 도출하기 위해서다.
| △8시 52분: 단원고 학생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살려주세요” 침몰 첫 신고 △8시 55분: 세월호에서 해상교통관제(VTS)센터에 “배 넘어간다” 조난 시고. △8시 58분: 목포 해경 상황실로 탑승객이 “세월호 침수” 신고 △9시 05분: 목포 해경, 해양경찰청에 ‘상황보고서’ 팩스로 전송 △9시 25분: 강병규 안행부장관 충남 아산 행사장에서 ‘세월호 사고’ 전달 받음. △9시 30분: 해경, 청와대(사회안전비서관실 등)에 ‘세월호 사고’ 상황 보고. △9시 31분: 안행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상황 전달 △9시 32분 ~ 10시 00분: 대통령에게 어떻게 상황 전달했는지 미공개 △9시 30분~40분: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 전원 해경 도움으로 탈출 △9시 40분: 해경, 해양사고 ‘심각’ 경보 발령 △10시 00분: 박 대통령,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도록 하라”고 지시 △10시 00분: 중앙재안안전대책본부(안행부), 110여명 구조 발표 △10시 10분: 해군 고속함, 고속정, 해상초계 링스헬기 도착 △10시 30분: 청와대 첫 브리핑 “대통령이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 △11시 10분: 세월호 60도 기울며 완전 침몰 시작 △11시 10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해경 말 인용해 단원고와 경기교육청이 발표) △11시 15분: 중대본, “구조인원 161명”이라고 발표 △11시 20분: 세월호 사실상 완전 침몰(사고 신고 2시간 20분 경과) △12시 50분: 최초 사망자 확인 △14시 00분: 중대본, “탑승객 477명 중 368명 구조됐다”고 발표 △14시 40분: 해군 구조대(SSU), 특수전단(UDT), 육군특전사 현장도착 (즉각투입 안됨) △16시 12분: 해난구조대 첫 입수(사고 신고 후 7시간 17분 경과) △17시 40분: 박근혜 중대본 방문,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왜 발견하기 어렵냐?” |
9시30분(보고)~11시20분(배 침몰), 靑 110분간 무엇을 했을까?
사고 당일 8시 52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전화를 걸어 “살려 달라”고 애원한 시각이다. 녹취가 돼있다 보니 정부도 이것을 ‘첫 구조 요청’으로 인정한다. 6분 뒤인 8시 58분 또 다른 탑승객이 목포 해경상황실에 세월호가 침수되고 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재난대응 콘트롤타워인 안행부장관에게 전달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그 시각 강병규 장관은 경찰청 행사 참석으로 충남 아산에 있었다. 이런 연유로 청와대 첫보고는 해경에 의해 이뤄졌다. 9시 31분이 돼서야 안행부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사고 보고를 한다.
황당한 일이다. 청와대 첫 공식보고가 사고 접수 반시간이 경과한 뒤 문자메세지로 이뤄졌다니. 문자 내용은 어땠을까. 엄청난 참사를 단순사고로 안이하게 판단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476명의 인명을 경홀히 여겼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대통령 보고 내용과 경위는? 야당 의원 질문에 靑 묵묵부답
대통령이 사고에 대해 처음 언급한 건 당일 오전 10시. 청와대 보고부터 28분 지난 뒤다. 하지만 어떤 내용으로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이 사고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사고 보고가 이뤄진 경위와 실제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역, 사고관련 위기관리센터의 대응, 대책회의 내용 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늑장 보고보다 더 황당한 게 있다. 청와대가 체계적인 위기통제에 아예 손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뒷북만 쳤다.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고 난 뒤에야 해경은 ‘해양사고 심각’ 경보를 발령했다.
선장 이미 탈출, 해경은 배 진입포기...이런데 대통령은 “단 한명 피해 없도록”
배 안에 300여명이 갇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릴 때 해경 구조선과 헬기는 배안의 참상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배안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밖으로 나와 물에 뛰어들어라”고 고함만 쳤어도 적지 않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해경은 입조차 굳게 닫은 구경꾼에 불과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현장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오전 10시 세월호 사고 관련 대통령의 첫 일성은 “단 한명의 인명 피해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사고 접수 65분 지나서다. 이때까지 구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다. 청와대와 대통령의 무능함과 안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지시를 했을 때 선장과 선원은 이미 배를 탈출한 뒤였고, 구조에 나선 해경은 배안 진입을 포기한 상태였다. 302명을 죽게 내버려 둔 채 “단 한명의 인명 피해 없도록”이라는 지시를 내린 대통령. 뒷북도 유분수다. 불세출의 블랙코미디가 대통령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
박 대통령 ‘발군의 블랙코미디’
당일 10시 30분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오늘 여객선 침몰사고와 관련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보고 예상 시각은 대략 9시 40분에서 10시 사이. 사고 신고 접수 50분~70분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이런데도 “즉각적 보고”란다. 왜 이런 거짓말을 한 걸까. 혹여 청와대 보고가 공식 사고 접수 보다 훨씬 일찍 이뤄진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기막힌 블랙코미디는 계속됐다. 사고 9시간이 지나도록 대통령이 사태를 감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정황증거가 국민 모두에게 공개된다. 사고 당일 오후 5시 40분 박 대통령은 중대본을 방문해 이렇게 다그친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
302명이 뒤집힌 배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모두 물속에 뛰어내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9시간 지나도록 가장 기본적인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한 대통령. 이래서 엄청난 인명이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구조보다 의전이 먼저, 잠수부보다 장관 접대가 우선
구조가 한창이던 10시 전후. 119상황실이 구조 중인 해경에 여러차례 전화해 팽목항으로 내려오는 장관들의 의전을 위해 서거차도에 있던 생존자들을 1시간 거리인 팽목항으로 데려오라고 다그치는 전화를 한 게 확인돼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중앙안전상황실은 자체 정보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TV속보를 보고서야 침몰 사실을 알았단다. 안행부장관의 격려행사 때문에 잠수사들의 출항이 수십분 늦어졌고, 해수부장관이 진도로 가기위해 해경 헬기를 차출하는 바람에 잠수특공대 16명은 헬기가 없어 배를 타고 사고현장에 당도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 해야 했다. 이러는 동안 배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청와대가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탓이다. 사고 보고 뒤 배가 뒤집힐 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10분. 이 시간 동안 대통령이 사태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제대로 판단했더라면 302명 모두 구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 110분과 대통령 540분 ‘미스터리’...결국 구조 0명
302명이 구명조끼 입고 물에 뛰어든 게 아니라 “기다려라”는 방송 때문에 배안에 갇히게 됐다는 사실을 대통령이 진즉 인지했더라면 잠수부 투입과 수중 구조작업이 빨리 이뤄졌을 터, 단 몇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배안에 갇혀 있던 이들에게 마지막 생존기회였던 110분. 이 동안 청와대는 무엇을 했으며, 박 대통령은 왜 사고 9시간 지나서까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걸까.
청와대의 110분과 박 대통령의 540분. ‘구조 0명’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만든 의혹의 핵심이다. 특검과 국정조사 뿐아니라 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국민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을 밝혀 내야 한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사람과 세상사이' 바로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