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회의 “故 유한숙 씨 죽음 한전이 책임져야”
지난 6일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음독자살한 故 유한숙 씨의 죽음에 정부와 한국전력에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와 밀양희망버스 기획단은 9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 씨의 죽음에 정부와 한전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명분 잃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공권력을 앞세워 강행한 것을 고인 앞에 사과하고 애도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어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공사의 타당성, 주민의 재산과 건강상의 피해, 주민들이 요청한 대안을 검토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유한숙 어르신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한전은 돌아가신 당일에도 공사를 강행했고, 경찰은 공사를 막아서는 주민들을 물리적으로 끌어냈다”며 “그리고 단 한마디의 사과나 대책도 내놓지 않은 채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심지어 어제는 유족들이 장례식장을 나와서 더 많은 밀양시민들과 국민들이 유 어르신의 죽음을 추모하고자 국민분향소를 밀양역에 차리려고 했지만 경찰은 밀양시네 모든 곳을 원천 봉쇄하고 분향소를 막았다”고 규탄했다.
그는 또 “어렵게 영남루 앞에 분향소가 설치됐지만 경찰은 곧바로 달려들어 분향소를 부수고 천막 등을 강탈해갔다”고 성토했다.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故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한 마디를 남기고 분신자살하셨다”며 “유한숙 어르신도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지 딱 두 달째에 자살하셨다. 두 분 모두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절망 속에서 목숨을 끊으셨다. 이런 분들이 또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일갈했다.
하 공동위원장은 또 “국가의 폭력이 극에 달했다”면서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관자도 있다. 이 방관자가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방관자들은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라며 “방관자들은 또 하나의 가해자다. 밀양 문제는 중립이 없다. 밀양 주민들 편에 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은 “뭐라고 말을 꺼내기 어렵다”며 “생명을 지키려는 환경운동가로서 어떤 형태로든 목숨을 버리는 행위에 대해서 찬성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목숨을 놓아버린 유한숙 어르신을 비난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염 사무총장은 이어 “7일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이 땅의 국민으로서, 환경운동가로서 무기력함을 느꼈다”며 “돌아가신 분이 제초제를 마시고 내장이 녹아가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느냐. 이런 고통에 대해서 손을 잡아주지 못하는 사회가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요청한다. 부탁한다. 한전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진행하는 공사를 멈춰야 한다. 또 정부는 한전의 이런 공사 진행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지 않나”며 호소했다.
또 “경찰은 한전이 아닌 밀양 주민들을 보호해야한다”며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하지만 이제 전기는 수많은 생명과 피를 빨아먹으며 흐르고 있다.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책회의 측은 이날 유 씨의 죽음 원인에 대해 경찰이 그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회의는 “경찰은 죽음을 목전에 앞 둔 가족들로부터 최초 진술을 받을 때부터 송전탑 건설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기 위한 유도질문을 던지며 사고의 의미를 왜곡했다”며 “급기야 고인의 자살 원인이 술, 돼지값 폭락과 축사 처분 문제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보도 자료를 발표해 유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이와 같은 경찰의 발표는 죽음 직전 고인이 남긴 유지를 전해들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책회의에 따르면 실제 유 씨는 사망 직전 유가족과 대책회의 공동대표인 김준한 신부 등에 “살아서 그것(송전탑)을 볼 바에야 죽는 게 낫다. 그래서 송전탑 때문에 농약을 마셨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사망한 유한숙 씨는 그 동안 적극적으로 송전탑 건설 운동에 참여해 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지난 11월 한전 직원으로부터 송전탑이 자신의집과 농장에서 불과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낙담해왔다.
유 씨는 이후 직접 농성에 참여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데모에도 자신 없고, 앞으로 어떻게 막겠느냐, 살 길이 막막하다. 나는 다 살았다. 한전 놈들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책회의는 한전 측에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했다.
또한 이날 저녁 7시에 대한문 앞에서 추모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