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최대 인파 모여 ‘진실 규명’ 촉구
국가정보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방방곡곡서 타올랐다. 진실을 원하는 시민들의 염원은 뜨거웠고, 들불처럼 번지는 촛불에는 깊은 분노가 서려있었다.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8일째 촛불이 켜졌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209개 시민·사회단체의 주최로 열린 집회에는 5000여명(경찰추산 2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해 충실한 국정조사 실시와 진실 규명을 외쳤다. 서울 뿐 아니라 대전,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 10여 곳에서도 함께 불을 밝혔다. 전국적으로 번진 민심의 횃불은 늦은 밤 까지 활활 타올랐다.
참가자들은 이날 자유발언을 통해 국정원 사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대학생은 “국정원 게이트가 커지니까 NLL 발언 논란 만들어 물타기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NLL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것’이라고 했다”며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피와 희생으로 지켜낸 겁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대학생도 “국정원이 우리에게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며 선동 당했다고 하지만 진짜 빨갱이 짓거리는 국정원이 하지 않았냐”며 국정원을 비판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고 강하게 꼬집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KBS 현상윤 PD도 자유발언을 통해 “지금 언론은 관내 언론이다. 재벌 앞잡이 언론이 되버렸다”며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그런데 이 창이 완전히 쓰레기통이다”고 맹비난했다.
현 PD는 이어 “KBS가 ‘원장님 지시말씀’도 뉴스에 내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현장에서 경찰간부가 증거인멸하다 걸렸는데 아무것도 보도 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지나가던 시민도 취재 현장에 나온 기자를 붙잡고 “취재만 하면 뭐하겠나. 방송에, 신문에 보도가 안 되고 있다”며 “언론이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힘없고 약한 국민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게 언론이 할 일 아니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국정원 게이트’로 촛불을 든 이후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음향 장비 문제로 중간에 마이크가 꺼지거나 노래 소리가 끊겼지만 시민들은 개의치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진실규명’ 등의 구호를 자발적으로 외쳤다.
또한, 촛불 집회에 앞서 오후 7시에 열린 거리 강연회에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진선미 민주당 의원, 박주민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연사로 나섰다.
진선미 의원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기본권은 투표권인데 저들은 그 권리마저 송두리째 앗아갔다”며 “모든 정책 현안에 대해서 그 정책을 수행한 정권이 잘 했는지 판단해야 그 이후에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을 것 아니냐”고 말해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진 의원은 이어 “그들은 국가 안보 따위에 관심도 없었다”며 자신들의 온갖 부패를 문제 삼지 않을 세력들이 재집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맹비난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정원 게이트는 1950년대 미국 공화당이 만든 매카시즘의 부활, 워터게이트, 3.15 부정선거 등 모두를 합친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건”이라며 “20세기는 총칼과 군대를 동원해서 권력을 찬탈하는 것을 쿠데타라 불렀지만 21세기는 사이버 전쟁과 심리전을 이용해 권력을 찬탈하는 것이 쿠데타”라고 규탄했다.
거리 강연을 듣던 참가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국정원을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또 연사들의 발언 중간 마다 뜨거운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거리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온 참가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 살배기 아이와 함께 온 김민지(30대 서대문구)씨는 ‘go발뉴스’에 “SNS에서 공지한 것을 보고 나왔다. 아이를 보니 답답하다”며 “상식적인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지 않았으면 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아이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온 임금란(30대 은평구)씨는 “2013년 대한민국이 이렇다는 게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나왔다”면서 답답한 마음에 울먹였다.
임씨는 “검찰에서 발표했을 때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다. 너무 크고 무서운 사건인데 세상이 조용해 두렵다”며 “그래도 오늘 집회에 와서 위로를 받고 간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소영(23)씨는 “이한열 실천단에서 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위해 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의 분노가 점점 퍼져가는 것을 느낀다”며 “오늘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 꼭 해결해야 될 문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 일대 외에도 전국각지에서 촛불을 밝힌 소식은 SNS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특히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피켓을 들고 나온 한 할머니의 사진이 실시간으로 리트윗되며 화제가 되었다.
한편, 촛불 집회 장소의 맞은편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대한민국바로세우기본부 회원들이 “촛불 난동 세력 즉각 물러나라”, “NLL 포기 진실” 등의 피켓을 들고 맞불을 놓았다. 회원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시비를 걸고 계란을 던지는 등의 행동으로 지나가던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