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공포 상상이상, 4‧3-5‧18 ‘치유센터’ 절실

광주트라우마센터 첫성과 발표…김창후 “제주 건립도 시급”

“총을 맞는 순간에는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다가 제가 못 일어나요. 소리는 지르는데 제가 깨어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땐 아들이 깜짝 놀라 자다 말고 와서 흔들어 깨우는데 그때서야 꿈이었구나 하죠.”(피해자 A씨)

“32년이 지났어도 항상 그날을 경험합니다. 군복 입은 애들만 보면 울컥울컥,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가도 그냥 울컥울컥, 마음이 울컥거리는 그런 것들이 올라와요.”(피해자 B씨)

“치과에 누워 기다리는데 동기들이 생각났어요. 내가 꼭 죽은 시체 그 기분이 들었거든요. 치료 받으면서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죽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너는 살아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만 같아요. 도청에서 죽은 사람들한테 항상 미안하고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피해자 C씨)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2년이 지났다. 하지만, 당시 국가 권력으로부터 가족·친구를 잃거나, 구타·고문 등 가혹행위를 겪은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의 상처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광주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 피해자 7명에게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10주동안 상담, 원예치유, 물리치료 등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첫 번째 집단상담 성과를 3일 발표했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를 치유한 의사·임상심리사들은 ‘우리 사회의 관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 피해자들에게 집단상담, 원예치유, 물리치료 등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mbc 화면 캡처
광주트라우마센터는 5·18 피해자들에게 집단상담, 원예치유, 물리치료 등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mbc 화면 캡처

'5·18민주화운동 트라우마, 치유의 첫발을 내딛다'는 주제로, 광주도시공사 13층에서 열린 집단상담 성과 발표회는 1기 집단상담 참여자들의 수기, 5·18민주화운동 트라우마의 특징과 후유증, 치유 과정 등으로 구성됐다.

집단상담 참여자 박천만(53)씨는 “살았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80년 5월 도청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떨리면서 막 열이 올라온다. 그때마다 사는 것 자체가 싫고 사람 자체도 싫었다”고 고백했다.

박천만씨는 집단상담 이후 “이제는 화도 안내려고 노력한다. 주변 사람들한테 따뜻한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졌다"며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당당하게 살겠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항상 지지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가겠다”고 변화된 마음가짐을 말했다.

또 다른 집단상담 참여자 윤다현(62)씨는 “80년 5월 아버지 산소를 돌아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잠시 광주를 들렀다. 계엄군에 맞서 폭행당하는 시민들을 구하려다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며 “홀딱 벗겨서 거꾸로 매달아놓고, 머리서부터 다리까지 전부 까맣게 멍이 들게 때렸습니다. 8.15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제 삶은 엉망이 됐다”고 고백했다.

윤다현씨는 이어 “트라우마 센터에 온 후로 일을 해도 즐겁고, 열심히 몸과 마음을 치료해서, 죽음 같은 거 보류하고 잘 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자긍심이 생겼다”며 “자긍심을 마음속에 담고 그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한다”고 밝아진 심경을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를 치유했던 의사·임상심리사 등은 우리 사회·공동체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집단상담을 진행했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국가폭력이 주는 무서움과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며 “이 작은 시작이 앞으로 더 많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불씨를 만들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강용주 트라우마센터장은 “5·18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선 우선 역사적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공동체를 비롯한 지역공동체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는 관심과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근 운영지원팀장은 4일 ‘go발뉴스’에 “개인적 피해가 아니라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피해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무력감과 절망감, 절멸감이다.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된다“며 ”우리 사회, 공동체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데 결정적이다“고 말했다.

김문선 임상심리사는 ‘go발뉴스’에 “피해자분들은 30년 전 일을 바로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외상후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태다”며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단상담 1기생들은 이후 현재 꿈 치료를 진행하고 있고, 이후 사진 치료 단계로 접어들 예정이다.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오는 10일부터 5월 29일까지 8차례에 걸쳐 2기 집단상담대상자 8명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에 들어갈 방침이다. 상담 문의는 ‘☏062-600-1980’이다.

한편, 제주 4·3 사건 피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강창일 국회의원 등은 최근 잇따른 토론회에서 이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임채도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지난 2월 19일 제주시 하니관광호텔에서 개최한 ‘제주4·3트라우마센터 건립의 필요성’이란 토론회에서 “4·3의 피해자들 가운데는 여전히 연좌제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신고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현재의 제주4·3특별법이 4·3사건으로 인한 신체적 물질적 피해 결과에 대해 생활지원금 및 의료지원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정작 희생자와 유족들의 정신적 심리적 피해와 이에 대한 치유 대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임 실장은 “현재의 제주4·3 특별법 개정을 통해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피해자의 정신적 치료를 위한 센터설립 지원 및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은 3일 팟캐스트 ‘이슈털어주는 남자 316회’에 출연해 “몇 년부터 우리도 트라우마센터 얘기를 많이 해왔다”며 “제주 4.3이 더 역사도 길고 그만큼 유족들과 희생자들의 트라우마가 더 길다”고 건립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김 소장은 “제주 지역 국회의원도 있으니 잘 묶어서 추진하면 좋겠다”면서도 “새누리당이 많이 협조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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