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진 “추재엽, 인간바베큐 고문 직접 봤다”

<개나발> 인터뷰서 “박근혜 유세지원, 마음 안좋아”

민주통합당 정봉주 전 의원
민주통합당 정봉주 전 의원

추재엽 전 양천구청장의 민간인 고문사실을 폭로한 재일동포 김병진씨는 15일 “인간바베큐 고문이 있다”며 추 전 청장의 고문기술을 상세히 묘사했다.

김병진씨는 이날 <발뉴스TV> 미디어비평 라디오 프로그램 ‘개나발’과의 인터뷰에서 1985년 보안사 군무원으로 통역일을 할 때 서울 송파구 장지동 수사분실에서 간첩조작 과정에서 추재엽 당시 수사관이 재일동포 유재길(70)씨를 고문하는 광경을 목격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사람 옷을 벗겨 놓고, 무릎을 꿇게 한다. 그리고 무릎과 팔 사이 조그마한 틈에 각목을 끼워 놓는다. 철제 책상 두 개를 갖다 놓고 그 위에다 사람을 올려 놓는다. 다리가 위로 가고 머리가 밑으로 가는 그런 자세가 된다. 거기에다가 코에서 눈으로 젖은 수건을 덮고 입과 코에다가 고춧가루 물을 먹이는 그런 고문을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인간바베큐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몸부림치고, 비명 지르고, 그러다가 조용해진다”고 말했다. 조용해진 이유는 고통스러워서 당사자가 “혼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재엽 당시 수사관의 고문 기술은 이외에도 아침 마다 방에 들어와 주먹질 하고 진을 뺀다거나, 원하는 답을 얻어 내기 위해서 물을 주지 않고 소금에 절인 밥만 주는 방법 등이 있다고 김씨는 폭로했다.

김씨는 자신이 당했던 끔찍한 고문의 기억도 생생하게 전했다. 김병진씨가 당시 추재엽 수사관을 만난 것은 1983년 보안사에 끌려갔을 때다. 7월 9일, 김씨는 그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는 교포들은 거의 아무 근거도 없이 잡아가는 시대였다”며, “잡아가서 4일 동안 잠도 못 자게하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팼다”고 회상했다.

또 “엘리베이터실이라는 곳이 있는데, 치과 의자 같은 데 손발을 끈으로 묶어 놓으면 그 의자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지하로 내려갔다 한다”며 “지하에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거기는 발전기도 있고 해서 전기 고문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물을 튀긴 것을 사람 손가락에 감아가지고 발전기를 돌리는 그런 고문이 자행되는 곳이었다”며 엘리베이터실 전기고문의 실체를 폭로했다.

김씨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포를 간첩으로 신고하는 거짓진술서에 서명하고 풀려났다. 그는 거짓진술서에 서명하게 된 경위에 대해 “고문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서 아팠기 때문”이라며 당시 협박 받은 내용을 털어놨다. 그는 “아직도 협박이라고 하니까 후유증이 심하다”며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김씨는 “우리 집사람을 창녀로 만들어서 팔아버리겠다”, 100일도 안 된 아이를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게 해서 고아원에 내다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김병진씨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과거 양천구청장 재보궐 선거 당시, 추재엽 전 청장의 선거유세 지원을 한 사실이 사진을 통해 뒤늦게 알려진 것에 대해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사진을 많이 봤다”며 “(세상이 아직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안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이상호 기자가 전두환씨를 방문 취재했다고 징역 10월 구형을 받았다고 전하자 전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김씨는 “전두환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며 84년 보안사에 강제 근무 할 때, 벽에 붙여진 교지를 읽은 적이 있는데 “보안사는 국민들이 두려워할 존재가 되어라”라고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보안사를 독재를 위한 공포정치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악용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김병진씨는 1986년 1월, 일본으로 돌아가 <보안사>라는 책을 냈다. 1988년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지만 노태우 정부는 이를 곧 압수하고 김씨에게 지명수배를 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추재엽 전 청장이 양천구청장 3선에 나선다는 사실을 알고 기자회견을 열어 추 전 청장의 민간인 고문사실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말을 잊지 못했다. 어렵사리 입을 뗀 그는 “다만 가족들을 생각하니까, 가족 생각하니까 그러네요”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날 이상호 기자는 “80년대는 역사 속에 묻힌 것이 아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 기자는 김병진씨에게 “서울에 오면 ‘발뉴스’에서 다시 만나 뵙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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