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교수 “감사원장 억지 사표 환경조성은 헌법 간접침해”
최근 양건 감사원장에 대한 교체설이 솔솔 피어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양 원장의 임기가 2년 가량 남아있는 상황에서 헌법에 명시된 감사원장의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감사원장 교체설은) 새술은 새부대에 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그러나 감사원장은 헌법에 임기가 보장돼 있기 때문에 난감한 문제”라며 “(임기가) 2년 여 남아있는 감사원장을 교체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헌법 제 98조에는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양 원장은 지난 2011년 3월부터 감사원장직을 맡아왔다. 해당 조항 대로라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첫 감사원장은 오는 2015년에야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양 원장 외에 최근 들어 정권교체기, 혹은 정권이양기에 임기가 걸쳐 있었던 감사원장으로는 이종남 전 원장(국민의정부-참여정부)과 전윤철 전 원장(참여정부-이명박정부)을 들 수 있다. 이 전 원장은 4년 임기를 다 채웠으며 전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1차 임기를 다 마치고 연임됐지만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만에 자진사퇴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대통령과 정부의 각 수장들이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감사원장의 직무에 대해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감사원장은 공직기강을 바로세우고 부패를 방지하는게 가장 큰 목적 아니냐”며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감사원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장 교체설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김 의원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해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은 물러나는게 맞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그러나 감사원장의 경우 헌법에 임기가 보장돼 있고 양 원장이 특별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큰 잡음이 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단순히 새 술은 새 부대란 명분으로 헌법에 보장된 임기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교체를 강행하는 것은 향후 정권운용에 있어서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반대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이에 앞서 <연합뉴스>는 지난 18일 “양 감사원장의 경우, 비록 헌법에 임기가 보장돼 있지만 청와대 내 교체 기류가 점차 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꼭 감사원장이 아니더라도 가급적 새 정부의 새로운 의지와 새로운 각오, 새로운 분위기에 맞춰 기관장이나 국영기업체 수장들도 자신들이 알아서 처신을 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교체 분위기가 많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자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감사원장의 임기(4년)는 헌법상 명문화돼 있다. 감사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일환”이라며 “대통령이 감사원장의 임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청와대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만일 감사원장을 억지로 사표내게끔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는 헌법의 간접침해가 될 것이고, 일방적으로 교체를 강행하면 위헌이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며 “헌법준수자이자 성실한 직책수행자로서의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헌법적 제약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18일 현안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헌법보다 우선하는 원칙은 없다”며 “청와대가 임기가 2년이나 남은 감사원장의 교체를 운운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행태이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축시키는 헌법 침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법과 원칙 그리고 약속과 신뢰를 수도 없이 강조해왔다. 그러나 임기를 보장하겠고 약속했던 경찰청장을 헌신짝 버리듯 갈아치우고 대부분의 복지공약을 사실상 폐기처분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장을 교체하겠다고 하는 것은 헌법마저도 무시하겠다는 오만한 독선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 대변인은 “더군다나 정권이 교체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정권교대 또는 연장된 상황에서 감사원장 교체는 어불성설”이라며 “청와대는 정권의 입맛만을 따지는 인사편식을 즉각 중단하고 감사원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경찰청장의 임기를 반드시 보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임기가 1년여 가까이 남은 김기용 경찰청장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져 ‘말바꾸기’ 논란이 일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