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랑스 남자가 한 중국 여인을 만난다. 아니 중국 ‘여배우’를 무대에서 본다.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해 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었다. 무대 위 여자는 ‘버터플라이’의 환생 그 자체였다. 환상이어도 좋았다. 그런 그녀가 남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남자는 영원과도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자기처럼 별 볼 일 없는 남자가 ‘완벽한 여성’의 사랑을 받게 되다니!

남자는 1964년 북경에 프랑스 영사로 와 있던 르네 갈리마르였다. 경극배우 송 릴링에게 푹 빠진 그는, 심지어 그녀를 만난 밤 세상에 대고 외친다. “환상 속에 있는 여자가 저 같은 남자를 사랑하다니!” 르네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초초상을 이렇게 평한다. “버터플라이는 정말 순결해요. 그렇게 무가치한 남자를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가.” 그런 그가, 서양 남자인 그가 동양 그것도 중국인 여자에게 갖는 감정이란 사실 자신의 오랜 환상과 소망, 어쩌면 좌절된 욕망을 투영한 것이었다. 송을 만난 후 르네는 점점 더 일로 인정받고 승진을 거듭한다. “여자랑 처음으로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어. 평생 기다려 왔잖아. 날 위해 다 바치는 여자.”

이런 르네에게 송은 말한다. “남녀 관계는 결국 제국주의적이에요.” 제국주의 국가의 능력 있는 남자, 식민지에 처해질 국가의 나약하고 복종적인 여자. 이 조합은 르네에게는 완벽한 쾌감을 준다. 송은 르네에게 마침내 고백한다. “선생님, 저는 천상 동양여자예요. 저한테 뭘 바라시나요? 전 이미 당신께 수치심을 바쳤는걸요. 그래요. 난 당신의 버터플라이예요.”

이미 유부남이었음에도, 여자를 모르지 않음에도 르네는 ‘동양여자의 특수성’을 받아주기로 한다. 송이 말하는 혹은 자신의 환상 속의 ‘동양 관습’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 두 사람의 육체관계는 늘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남자는 한 번도 여자의 벗은 몸을 보지 못한다. 둘은 세상에 다시없을 완벽한 사랑을 혹은 최고의 무대를 날마다 공유한다. 적어도 르네는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잔인하다. 송은 중국 공산당이 프랑스 대사관 부영사인 르네에게 접근해 기밀을 빼내기 위해 훈련시킨 스파이였다. 결국 둘은 반역죄로 프랑스 법정에 서게 된다. 송은 남자였다. 20년간 르네가 북경과 파리에서 곁에 두고 사랑했던 것은, 남자였다. “끝내 직면할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사실, 내가 사랑한 것이 남자였다는 것.” 르네는 이 말을 남기고 <나비부인>의 ‘나비’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하직한다. ‘버터플라이’는 완벽한 환상이었다. 자신의 욕망이 창조하고 스스로를 속이며 유지시킨. <M.버터플라이>는 중국계 미국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1986년 국가기밀을 유출해 법정에 섰던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시코프'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송은 자신의 관리자인 여성 당원 친에게 말한다. “왜 경극에서 남자가 여자 역을 하는지 알아요? 어떤 여자가 정말 여자다운지 남자는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극 말미에 완벽하게 남성적인 매력을 드러내며 수트를 입고 법정에서 말한다. “어떻게 20년간 모를 수가 있었냐고요? 저는 동양 남자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남자일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연강홀에서 하는 김광보 연출의 연극 <M.버터플라이>를 보았다. 김영민의 르네와 김다현의 송은, 이 작품이 왜 우리시대의 명작으로 남게 됐는지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했다. 희곡으로 봤을 때와 압도적으로 다른 느낌은, 송의 완벽하게 고운 여성미와 20년 후 셔츠를 입고 가슴 근육을 드러내며 등장했을 때의 완벽한 남성미였다. 그 이중성은 너무나 극명했으나, 정교했던 그들의 환상은 그 모든 것에 눈을 감은 셈이었다. 서로의 필요와 충족을 위해서 말이다. 그 남자와 여자는 동일인이었다. 그게 송이었다. 그러나 또한 송이 아니었다. 르네는 송의 실체를 보려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볼품없다’고 여긴 르네는 환상 자체를 사랑하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비장하게 아름답고 소름끼치게 욕망의 허상을 까발린 이 연극을 보면서, 인간이란 때로 실제보다 허상을 더 사랑하는 일에 능숙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우리 사회의 화제였던 일명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한 생각에도 잠기게 됐다. 정말, 이제는 본격적으로 성숙한 논의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처벌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 방지법)을 말한다. 2004년 9월부터 시행됐다. 2000년 9월19일 군산 대명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했고, 2002년 1월29일 군산 개복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로 성매매 여성 14명이 사망했다. 인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성매매 피해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결국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성매매특별법 이전에는 5.16 직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1961년 11월 제정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있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크게 달라진 점은, 경찰이 이 법을 근거로 성매매 집결지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식의 단속은 ‘눈에 보이는 성매매’를 사라지게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호객행위나 성매매 지역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오피스텔이나 원룸 등에서 벌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매매’가 주택가는 물론 학교 주변까지 스며들었다. 실태 파악조차 안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경찰 단속은 오히려 종사하는 여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태까지 발생시키곤 한다. 성매매특별법으로 성매매를 실질적으로 ‘불법화’했더니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되고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생존권 위협, 인권침해’를 주장한다. 성매매특별법 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김강자 전 총경도 부분적 ‘집창촌과 공창제 합법화’를 일관되게 주장한 지 오래다. 이 법이 시행될 때,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배려도 없이 공간을 소거시키는 일에만 몰두했기에 부작용은 당연했다. 가난한 여성들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을, 우리사회는 단속과 처벌 강화의 법률로 제도화시켰다. 이 법이 의도하는 ‘궁극’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성욕은 단속과 계도로 인한 양성화를 거쳐 결국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을까? 이 법이 특별법의 이름으로 심지어 제도로 정착된 것에는, 말 없는 다수의 암묵적 동의도 작용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시행이 된다면 뭔가 ‘깨끗해지고’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포함하여. 감히 단언한다. 한국 여성들의 아니 한국 주부들의 환상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른 남자는 몰라도 내 남자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혹은 그럴 수 없게끔 ‘장소’를 지상에서 몰아내면 ‘근절’되고 그게 오래되면 ‘소멸’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무성(無性)의 사회화로 이끌기 위한 이분법과 이중 잣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법이 버젓이 있는 국가인 대한민국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고위층들에겐 아무 해당 사항 없을 것들이니, 그저 없는 것들은 욕망마저 ‘없는 듯’이 살아가라는 지침이었을까.

부디, 아름답지만 허상일 뿐인 어떤 환각이 우리를 도착(倒錯)에 빠지게 하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각종 허울과 족쇄뿐인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있는 것을 없다고, 없는 것을 있다고 여기게 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