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성아트홀이 지난 2월에 문을 닫았다. 아니 닫았었다. 한 해 200편이 넘는 ‘예술’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반경 내 적어도 300만명의 관객 중 ‘작은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던 공간의 폐점 이유는, 정부 지원금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관 지원 사업에서 탈락해 운영난을 겪다 지난달 25일 폐관한 것이다.

▲ '동성아트홀' 블로그

다행히도, 동성아트홀은 다시 문을 열게 됐다. 김주성 대구 광개토 병원장이 영화관을 인수하게 돼 지난 10년 간 이어온 지역 예술영화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이며 다음달 1일 ‘장국영 특별전’을 시작으로 공식 개관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대구 동성아트홀 때문에 한동안 마음 졸였다. 아는 사람조차 변변히 없는 대구에 대해 그곳의 한 극장에 대해 그토록 마음 아파하게 된 것은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투와이스 본(Twice Born, 2013)>이라는 영화였다. 영화가 개봉한 것을 알고 검색을 했다가, 정말이지 일주일만에 내린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극장에서 내려갔다면 ‘다운’이라도 받아야겠다고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곧 알게 되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구 동성아트홀에서만 상영 중이었다. 극장의 이름이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다가왔다. 여력만 된다면 (내게는)낯선 대구라는 동네에 내려가 동성아트홀이 목적지인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흥행’ 때문은 아닐, 영화를 상영하기로 약속한 기간을 충실히 지킨 그 뚝심은 다른 영화들에도 이어졌다. 좋은 영화인데 상영관이 띄엄띄엄 있는 경우, 동성아트홀의 이름은 반드시 있었다.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도 그 지역의 영화 볼 권리를 지켜주는 동성아트홀의 당연한 업무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있어야 할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동성아트홀. 끝내 지켜주지 못하게 된 우리의 상황. 답답하고 괴로웠다.

영화 <투와이스 본> 얘기를 좀 더 하자면, 보고 나서 한동안 먹먹했다. 이토록 슬픈 영화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1992년 4월에서 1995년 12월까지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보스니아에서 있었던 국제적인 무력충돌로 2차 대전 이후 50년만에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학살이었다. 영화가 화면 안에 담은 것은 실제 비극의 백만분의 일도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인해 참으로 진정되지 않는 통증이었다.

▲ 영화 <투와이스 본>의 한 장면

물론 영화는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다가 마지막에야 비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전반부는 빼어난 로맨스 영화로 손색이 없다. 관객의 놀라움과 진한 여운은 모든 장면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 영화가 다 끝난 뒤에 비로소 막이 오르는, 그 오랜 세월 가려져 있던 진실. 아들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린, 여러 명의 엄마와 아빠들. 끔찍한 내전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잉태와 출산... 그리고 화인(火印)으로 어미의 몸에 새겨진 흉터. 통곡으로도 풀리지 않을 한의 연쇄 고리였다.

제 아무리 숭고한 인간애로도,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게 있다. 인간은 그리 많은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갓난아기의 ‘사회적’ 생부가 되어야 했던 사진작가 디에고(에밀 허쉬 분)의 고뇌. 그 모든 진실을 알고도 아이의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했던, 그러나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만은 할 수 없었던 그. 사랑하는 젬마(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헤어져 살 수도 없으며 그 아이와 함께도 살 수 없었던 그의 참혹한 선택. 그런 게 전쟁이었다. 전쟁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보고 나면 도저히 잊히지 않을 영화였다. 내게는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감독의 이름 보다, 2009년 베스트셀러인 원작소설 <세상 속으로(VENUTO AL MONDO)>를 썼다는 작가이자 감독의 아내인 마가렛 마잔티니 보다, 동성아트홀의 이름이 더 강하게 남은 영화이기도 했다. 좋은 영화지만 정말로 흥행이 어려울 듯한 이런 작품을, 그나마 파일로 뒤늦게라도 볼 수 있게 된 것은 어딘가 상영관이 존재했던 덕택이다. 상영관에 걸리지 못한 영화는 특히 상업적이지 못한 수작의 경우 VOD 출시도 어렵다. 영화는 어떻게든 극장이라는 마당을 확보해야 이후에도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된다.

▲ 김원 문화평론가

대구 동성아트홀을 포함한 작은 영화관들에 정부의 지원이 끊기게 된 명분이야 나름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 석연치 않은 이유들의 앞에 <다이빙벨> 상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고 괜히 눈물 나도록 속상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감히 독립군이 돼야 하는 상황인 것인지 아프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들은 그러고도 남을 만큼 우리 사회에 중요한 함의를 던져 준다는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이어가고 싶다. 작은 영화들과 그 영화들의 집인 예술영화관들을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