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너무나 끔찍한 뉴스였다. 때로 현실은 그 어떤 픽션보다 잔인하다.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을 느낀다. 48세 가장이 아내(43)와 큰딸(14)과 작은딸(8)을 살해하고 도주 중 범행을 신고하고, 그날 오후 검거됐다. 고가의 외제차를 탄 상태였고, 가족 살해 후 자신도 자살할 계획이었으나 ‘차마’ 못 죽었다는 그의 말처럼 손목에는 ‘주저흔’이 있었다. 집에서는 가족들의 시신과 함께 그가 쓴 ‘유서’가 발견되었고, ‘실직’ ‘대출’ ‘생활고’ ‘주식투자 실패’ 등의 단어들이 보였다. 새해를 맞고 닷새째 벌어진 사건이었다.

피의자는 잡혔는데 이 사건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여전하다’는 의견이 많다. 묘하게도 어떤 분석을 읽어봐도 미진해 보인다. 왠지 들어맞지 않는 듯해 답답하고 ‘진짜 동기’는 따로 있을 것 같다는 댓글들이 많다. 경찰의 공식발표 또한 ‘벌어진 일’을 나열한 것일 뿐 ‘진짜 이유’에 답을 못하긴 마찬가지다. 소위 일류대 경영학과 출신 ‘엘리트’인 강씨는 3년 전 실직하기 전 외국계 회사 두 곳과 모 한의원 등 총 세 곳에서 일을 했고, 외국계 회사에서는 상무를 지냈다. 그는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자 두 딸에게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집을 담보로 5억 원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최근 1년간 집 근처 고시원으로 출퇴근하듯 규칙적으로 오갔다.

그는 정말 경찰 발표처럼 ‘주식투자 손실로 자포자기해’ 범행을 저질렀을까? 그러나 그의 아파트는 강남의 40평대로 매매가가 11억원에 달한다. 통장에는 1억3000만원의 잔고가 있었고, 강씨가 아내 통장에 3억원이 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여느 생활인들이 생각하는 ‘생활고’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양가 부모도 모두 중산층이었다. 경찰은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자신이 실직 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탓”으로 답을 내렸다.

▲ ⓒ 채널A <하종대의 쾌도난마> 화면 캡처

심지어 경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과정에서 만난 강씨는 순한 성격으로 참혹한 범죄를 일으킬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강씨는 자기가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의지가 약하고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등 성격적 문제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범죄”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뉴스를 접한 시민들의 생각은 경찰과 좀 차이가 있는 듯하다. 댓글들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이다. 첫째,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며 이 선택이 납득 안 간다. 둘째, 실직한 가장의 불안한 심리상태만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셋째, 재기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이 남았는데 왜 막다른 참극을 저질렀는지 이상하지만 실패의 압박감만은 이해된다. 재산을 처분하면 더 이상 ‘중산층’ 유지는 불가능하다.

문득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 오늘날 일본가족의 재구조화>라는 야마다 마사히로의 책에 언급된 ‘쓰쿠바 처자식 살해 사건’이 겹쳐진다. 1999년에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은 국내에서는 2010년에 번역 출판됐다. 책에 언급된 이 살인사건은 1994년 자수성가한 ‘엘리트’ 의사가 ‘미인’ 부인과 자식을 살해해 각종 매스미디어를 장식했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남편의 여성편력과 폭력, 부부의 경마 취미, 부인의 명품 취향, 거품경기 시기의 고급 아파트 투자 실패, 자녀 교육을 둘러싼 대립 등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자 부인은 고액의 위자료와 양육비를 요구했고, 부부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자택에서 부부싸움 끝에 남편은 가족을 살해하고 시체를 자루에 넣어 요코하마항에 가져가 유기했다. ‘이혼하면 될 것을 왜 살해까지 했느냐’는 의문이 매스컴을 들끓게 한 사건이었다.

저자는 (고성장기)연애결혼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결혼이 갖는 ‘애정충족’과 ‘생활의 보장’을, 저성장 사회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사회학적’ 해석을 한다. 남편은 ‘싫어진 사람’과 살기도 싫고, 재산분할과 양육비로 인한 ‘계층추락’도 싫어 말하자면 ‘생활’과 ‘감정’ 중 어느 한쪽을 버리지 못해 다 잃었다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의 생활이 적어도 나빠지지 않는다는 전망이 있는 경우에 사람들은 거의 불만을 갖지 않는다. 반대로 오늘보다 생활수준이 나빠지는 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다.” “이혼은 생활수준의 저하를 초래한다. 세간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 요인으로 계층의 문제가 있다. 둘 다 ‘상류계층’이나 ‘서민계층’에 속한다면 이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산층, 가진 게 많다고도 적다고도 하기 애매한, 그것도 ‘엘리트’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로 이루어진 핵가족의 취약한 사회 경제적 구조를 저자는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서초동 처자식 살해범 강씨의 마음은 결코 단순할 리 없다. 대단히 복잡했을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잘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누린 지위가 높았던 그의 생각의 범주와 양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 그리고 경영학에 대해 아는 만큼 닥쳐올 미래에 대한 ‘암울한’ 계산이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했을지 모른다. 암울한 미래 전망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그에겐, 자신의 머리로는 아무리 고민해도 한 줌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마도.

살인자가 된 이 가장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성공한 중산층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왔고, 어쩌면 이 사건이 알리는 붕괴의 주체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쉽게 말해,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이고 집에 빚이 얹혀 있는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의 ‘가처분소득’에 대한 냉혹할 정도의 계산 말이다.

삭막하게도 우리는 ‘구조조정’이 사람을 자르고 정리하는 뜻인 줄 아는 세상을 살고 있다. 먼저 심각한 저성장의 딜레마를 겪은 일본의 사례만 봐도 안다. 우리 사회는 갈등이 첨예하다 못해 사람이 일할 권리를 주장하면 ‘굴뚝’ 밖에 올라갈 데가 없는 불통의 사회다. 저성장사회인데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인정 못하고 심하게 저항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 김원 문화평론가

야마다 마사히로는 ‘쓰쿠바 처자식 살해사건’을 일종의 ‘인원정리’로 정리했다. “감정적으로 비효율적인 가족(싫어졌다는 감정이 발생한 가족)을 구조조정”한 것으로 본 것이다. 너무 잔인한가? 서초동 가족 살해의 원인에 ‘효율’이라는 개념이 안 들어갔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범인 자신에게까지 실행했든 못했든 간에 삶의 버거움과 부담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자 했던 방법,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2015년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