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을 잘 챙겨보는 편도 아니다. 처음엔 우연히 보게 됐다. 그런데 3주에 걸친 일명 <무한도전-토토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보고 난 지금은, 뭔가에 홀린 기분이다.

방송은 끝났는데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꿈은 아니었을까. 신기한 일은 이렇게 잠시 푹 잠겨 있다 가까스로 2014년 연말 그리고 2015년으로 돌아온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함께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꿈속에서 노닐었던 셈이다. 그 많은 시청자들이. 22%가 넘게 본방을 사수했고 순간시청률 35.9%를 기록했다. 놀라운 공감이다.

방송 이후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은 선곡표가 저절로 ‘토토가 특집’처럼 돼버렸고, 인기곡 순위는 물론 갑자기 ‘문화’ 전반을 휩쓸었다. 하필이면 딱 그 무대 그 방송이 뭔가를 강렬하게 점화시켰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를 찾는 건 사실 시청자들의 관심사는 아니다. 시청자들은 그저 가슴 벅차도록 즐거웠고 아주 뜻 깊은 시간여행의 기회를 누렸다. 그래서 적어도 ‘토토가’가 있던 주말에는 위안을 받았다. 과거에 행복했던 것인지, 지금 이 방송으로 인해 행복한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지만 잠깐 행복했다.

제작진 특히 김태호 PD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공을 출연 가수들과 그 날의 방청객, 시청자에게 돌렸다. 이전에도 몇 번 비슷한 기획을 논의했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다고 한다. "우리의 우상이던 90년대 스타들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가 짊어진 삶의 짐들이 있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이번에 출연하신 가수 분들이 가장 베스트였다. 모든 참가 가수들이 기억하는 90년대는 각자의 입장에선 자신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한 분, 한 팀이 전설들이기 때문이다."

김태호 PD는 "저희도 미처 몰랐던 2015년을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관통하는 감정의 뇌관을 건드린 데 있다고 보는데, 결과적으로 시청자 여러분이 '토토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찬란했던 그때를 기억하는 방청객과 시청자가 주인공"이라는 아주 포괄적인 나름의 인기 요인 진단을 내렸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방청객들은 어떻게 해서 그처럼 ‘들어줄 준비’로 충만했을까. 그 충만함은 왜 현장의 열기로 그치지 않고 전파를 타고 전 시청자를 사로잡은 ‘현상’이 된 것일까. 이 묘한 감동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일단은 좋다. 적어도 이번 주말의 ‘무대 뒷얘기’가 남았고, 이 인기에 힘입어 최소한 설 특집 방송까지는 예정돼 있다. 설날까지는 ‘토토가’의 단꿈에 빠져 있어도 된다. 그냥 좋다. 뭔가 알 수 없는 힘을 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주 많은 이들에게.

몇 가지 (억지로)분석을 하자면, 그 노래들이 어디를 가도 사방에 메아리치던 시절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첫째, 우리는 아직 그다지 늙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벌써 늙어버린 듯이 혹은 감정이 다 죽어버린 듯이 지내서는 안 되는 나이였다. 함께 나이 먹어가는 저 스타들이 약간의 분장과 연출로 충분히 그때 그 느낌을 살려낼 정도라면, 이건 그리 오래 전 과거가 아니다. 스타들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 어딘가가 확 펴지는 통쾌함이라니!

둘째, 오직 ‘즐거워’ 춤을 추고 노래했던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순전히 기쁨을 위해 죽도록 땀 흘렸던 무용(無用)의 가치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쓸모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즐거워서 했다. 쓸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들이 우리를 황홀하게 살 맛 나게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실용성이라곤 없었던 그 시절 즐겨 입던 옷들, 너무 길어 질질 끌고 다녔던 바짓단과 장식들... 제멋에 겨우면 그만이었던 수많은 것들. 그리운 것들. 생생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그리 깡그리 잊고 살았을까. 어쩌다 이렇게 머릿속은 ‘돈’과 ‘숫자’로 가득해졌을까. 우리가 때 이르게 소진되고 ‘타버렸’기 때문일까.

놀기 위해 대학을 갔던, 친구랑 만나 별 계획 없이 별 주제 없이 수다를 떨고 싶어서 ‘학교’를 가던 날들이 있었다. 그게 하루 일과였고 ‘시간표’였던 시절이 분명 우리에게도 있었는데... 그랬는데. 우리는 지금 그때로부터 얼마나 온 것일까? 놓쳐버린 것은 단지 흘러간 시간뿐인 걸까?

‘토토가’에 출연한 스타들 특히 댄스 가수들의 건재가 왜 그리 눈시울 뜨거울 정도의 감격을 준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뜨거움과 울컥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진정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것인지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단순한 복고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상실감이나 아쉬움 혹은 ‘향수’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 이전 세대들이 ‘흘러간’ 시절을 회고하는 것과도 분명 뭔가 결이 다른 이 감정은 정말 무엇일까. 우리 역사에 어쩌면 처음이었던 ‘풍요로운 세대’였던 어떤 한 세대에게, 이전 세대와도 이후 세대와도 다른, 자신들이 놀았던 ‘물’과 숨 쉬었던 ‘공기’의 그 어떤 냄새가 어느 날 갑자기 왈칵 코 밑까지 밀고 들어온 것이었을까.

그 방송을 보는 시간만큼은, 다 잊었다. 일상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하던 수많은 것들을 잠시 싹 잊었었다. 정리되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좋았다. 왜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좋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기존의 어떤 것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하여 이 열광의 이유는 아마도 기존의 분석 틀로는 설명 못할 것 같다. 그 시절에 그 음악들을 좋아했건 아니건 심지어 싫어했을지라도, 그 노래들은 한 시절의 공기 같은 것이었다. 그 노래들은 어떤 연령대의 사람들을 (거의)하나로 묶었다.

▲ 김원 문화평론가

이상하게도,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선명하게 가르고 있는 ‘사회적’인 것들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자기 착취, 성과를 향한 압박, 탈진 우울증, 자폐적 성과기계, 과잉활동, 치명적 수동성... 이런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조리 있게 등장하는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 마지막 문장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떠올랐다.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 그게 우리 상태라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분명 ‘토토가’는 우리 마음속의 뭔가를 점화시켰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말이다. 일단은 즐기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보며 자라던 그 때 그 시절처럼. 살아 있는 것처럼 사는 게 너무 당연할 줄 알았던 그 때처럼. 덧없을지라도 한바탕 웃음으로 끝날지라도, 이 느낌만큼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