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삼관>은 감독이 밝혔듯이 ‘동화’다. 혹은 동화 같은 얘기다. 피를 팔아서 고기를 사고 꽃을 사고 마음 둔 여자에게 뭐든 먹여줄 수 있던 시절의 얘기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평생 다닥다닥 붙어산다. 과거에 ‘뭔가 있었던 사이’라고 해도 거길 떠나지 않기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서 마주쳐가며 산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런 시절이 배경이다. 50년대 초에서 60년대의 충남 공주. 그 시절의 거리와 동네를 재현해 낸 공들인 세트와 소품은 아련한 감동마저 준다. 인생의 중요한 때가 되거나 돈이 정말 필요해지면 피를 팔아서 필요한 만큼을 지불하던, 허삼관이라는 사내가 주인공이다.

후반에 그가 ‘3개월에 한 번’이라는 피 뽑기의 규칙을 어기고 여기저기 병원을 돌며 매혈을 해서, 쓰러지고 기절을 해가며 그래도 어떻게든 거액의 치료비를 마련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니 착잡하면서도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땐 ‘피를 팔면’ 아들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팔 것이 있었다. 그나마 몸이 건강하면, 뭐든 해 볼 수 있었다. 아비는 피를 여기저기서 목숨 내놓고 팔고, 어미는 장기를 떼어내 가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한다. 슬픈 일이지만 마음 편히 울거나 감동할 수가 없다. 지금은 피를 팔아서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매혈은 그 이름도 아름다운 헌혈로 바뀌었다. 피를 내놓는 일은, 헌신과 봉사의 영역이 돼버렸다. 그래서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봉사자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곳이 된 것일까.

<허삼관>이라는 동화 속 세계는 교환이라는 개념이 살아 있던 시대였다. 우리는 지금 피도 못 판다. 노동이나 땀에 대한 적정한 ‘교환’ 따위는 생각 안하고 산 지 오래다. 왠지 허삼관의 막막함 보다 덜하지 않은, 더 심하다 못해 벽에 부딪친 막막한 기분이 든다. 정말 저런 상황이 됐을 때 어딜 가야 하나. 그때보다 지금이, 살기가 나아지긴 한 건가?

이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따뜻하다. 그 또한 미덕이 아닐까. 특별히 착하지도 끝까지 못되게 굴지도 못하는 한 사내가, 그래도 기어이 아버지가 되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친다. 세상 누구도 자기처럼 기막힌 ‘종달새의 왕’으로 살진 않겠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다. 아버지는, 좀 늦었을지라도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오면 된다. 거기가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이며, 얼마나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이든 간에,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피란, 생명이었다. 허삼관에게 자신의 피를 판 돈으로 밥을 사주는 대상은 철저하게 자기 식구뿐이었다. 아내와 세 아들(나중에는, 확실한 자기 핏줄인 이락이와 삼락이). 근처에 사는 삼촌조차 ‘식구’는 아니었다. 그랬는데 그 철칙을 깨고 들어와 그의 피를 무한정에 가까울 만큼 뽑아간 일락이는 원수 같은 하소용의 핏줄로 밝혀진다. 이 관계는 대체 뭐란 말인가.

“쥐뿔도 없는” 그가 피까지 팔아가며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웠다는 사실, 그 어디에서도 보상 받지 못할 그의 노고와 헌신. 할 수만 있었다면, 모질게 뚝 끊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이의 그 서글픈 뒷모습,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간절하게 자신을 찾는 외침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게 이 생을 질기게 휘감고 불행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끌고 간다 한들, 차마 끊지 못했다. 그게 사랑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피를 뽑고 피를 파는 장면이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쪼로록’ 이라는 단어가 비릿한 피 냄새를 각인시킨다. 방금 피를 뽑은 자리에 또 바늘을 꽂는, 사람의 팔과 얼굴색이 점점 파랗게 혹은 하얗게 질려가는 구체적 과정을, 오직 한 가지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부디 죽지만 말기를. 일락이든 허삼관이든 적어도 이 영화 안에서 죽지만 말기를. 꼭 살아나기를.

영화 <허삼관>은 아마 개봉 전에 이미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판의 지점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의 원작과 그 깊이와 사회적 의미들은 차고 넘치도록 깊고 넓다. 그것들을 거의 모른 체 하다시피 만들어낸 이 동화 같은 영화는, 그야말로 맹랑할 정도로 ‘선택과 집중’을 시도했다. 연기 잘하는 대단한 배우들이 떼로 등장함에도 거의 배경이고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기능적으로 움직인다. 감독은 자기가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 혹은 분위기,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에 몰입한다. 게다가 하정우가 감독이고 주연이다. 우리가 배우 하정우를 꽤나 좋아하긴 하지만 그가 감독으로 제작비 90여억원의 대작 상업영화를 들고 나오자 당황했는지도 모른다. 하정우에게서 보고 싶던 연기를 기대만큼 못 본 것일까. 영화 <허삼관>은 어쩐지 지금 작품 속 일락이와 비슷한 처지로 보인다. 전에 없이 ‘원작’을 충실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교와 비난에 직면했다. 우리나라 소설도 아닌 중국 소설을 갖고 말이다.

원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나는 여기서 소설 얘기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 그저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몰라도, 원작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도 느껴지는 영화 <허삼관>의 느낌을 전하려 한다. 사실 궁금했던 건 왜 ‘매혈기’라는 제목이 붙은 왠지 안 봐도 상상이 갈 것 같은 소설을 어떻게 대중상업영화로 만들었을지였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분위기가 어딘가 연상될 것 같은, 제아무리 풍자와 익살과 골계미를 강조해도, 알고 나면 뼛속깊이 서글픔이 스며들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허삼관>은 밝고 따뜻하다. 인생의 고비들을 헤쳐 나가는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듬직하고, 마을 최고의 미인이던 아내는 야무지고, 아이들은 귀엽다. 영화를 보고 나면 몇 몇 장면들, 식구가 밥을 먹는 장면 등등이 떠오른다. 왠지 맥락보다는 어떤 구체적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영화로구나 싶었다. 이 영화의 의도는 어쩌면 그런 구체적 장면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밥상, 생생한 피 뽑는 장면, 매혈만이 유일한 수단인 것 같은 저 끝도 없이 늘어선 남자들의 대열...... 그나마 구체적인 팔 것이 있었던 그들은, 매혈로 생긴 돈으로 구체적으로 해결할 것들이 있었다.

부잣집이 이웃해 있다고, 설령 그 집 아이를 11년 간 (모르고)키워줬다고 해도,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자력갱생하는 수밖에. 자기의 필요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피 한 번 파는 정도로 해결될 일 앞에서는 최대한 미적거리며 그토록 나태하게 굴던 허삼관이, 도저히 방법이 안 보이는 일 앞에서는 미친놈처럼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변한다. 이 영화의 묘한 부성애다. 동물적 감각과 동물적 부성애가 살아 있는 건강한 아버지가, 품 안의 새끼들을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지킬 수 있던 마지막 동화의 시대 같은 것이니까.

▲ 김원 문화평론가

두 팔로 아이를 안아주고, 들쳐 업고, 제 피를 뽑아 아이를 구할 돈을 마련하고, 그런 두 팔의 감각이 너무도 생생하게 ‘아버지’를 증명하는 영화. <허삼관>은 그런 영화다. 우리가 아버지를 떠올릴 때 가장 동경하는 건강한 팔뚝의 이미지를 여한 없이 보여주고 있다. 실제의 아버지와 비슷하든 비슷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그 팔뚝을 영원히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