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둥이는 세쌍둥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KBS <해피 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인기로 인해 어떤 특정 집안 세 손자를 뜻하는 고유명사처럼 변해버렸다. ‘대한’‘민국’‘만세’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이란성 다태아와 배우인 그 아버지가 출연하는 소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들 가족은 예능 스타로 떠올랐다.
육아라는 게 예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 나라 상황은,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소 해괴한 일일 수 있다. 자기 아이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부모는 TV를 보기도 여의치 않다. 불과 몇 초 사이에도 다치고 위험해질 수 있는 어린 아이를 보는 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잠깐 짬이 나더라도, 육아에도 지쳤는데 TV에서까지 (남의)아이와 씨름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 수 있다. 자신의 현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위 육아 예능을 보는 시청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상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사람들만이 이것을 예능으로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조만간 아이를 낳거나 키울 계획이 없는 젊은이들, 말하자면 육아가 ‘남의 일’ 같은 경우에는 관찰예능 정도로 즐겁게 볼 수 있는 듯하다.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고 그 귀여운 모습만 가끔 가족행사 때 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텔레비전 속 아이들이 감탄의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화면 속의 아이들은 인형처럼 예쁘고 질서도 잘 지키고 말을 아주 예쁘고 예의 바르게 한다. 실제의 아기 돌봄에서 느끼는 공포에 가까운 예측불허의 행동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 방송에서는 아이의 행동이 정말이지 잘 통제되고 있다. 안전하다. 예측불허인 건 귀엽고 깜찍한 애교 정도다. 세상에 어쩜 저런 아이들이 있을까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회 경제적 요인 때문에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니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며 대리만족 하고, 아이를 못 낳으니 ‘육아 예능’을 보며 ‘관찰’이나 하는 것일까. 슬픈 시대의 초상을 새삼스레 꺼내려는 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나마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 아기들의 귀여움 덕에 위안을 받는다는 시청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삼둥이’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뉴스에 언급되는 게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이 연이어 떠오른 유사 사건들과 묶이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의 한 단면을 본 기분이라면 비약일까.
모두 알겠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중인 ‘삼둥이’들의 할머니는 현직 여당 국회의원이자 최고위원이다. 그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2009년 KBS <시사기획 쌈>은 ‘2009 국회 보고서, 의원님의 두 얼굴’ 편에서 김을동 의원의 인턴이 송일국의 매니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의원의 경우 인턴을 2명을 둘 수 있고 인턴의 연봉은 1200만원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됐다. 당시 <시사기획 쌈> 방송 이후에는 다른 각도의 분석도 나왔다. 애초 송일국 매니저였던 사람을 ‘인턴’으로 등록해 그 월급이 세금으로 지출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인턴이 매니저 일을 한 것이든, 매니저가 ‘인턴’으로 등록된 것이든, 그의 월급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6년 전의 일이지만 의혹이 계속 불거졌는데, 배우 송일국의 아내인 현직 판사 정승연 씨가 1월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문제를 나름대로 ‘설명’한 것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SNS를 통해 이 글이 널리 퍼지면서 오히려 대중들의 반감을 크게 샀다. 현직 판사가 대중들 생각에는 ‘인턴 사유화’로 보이는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사용한 단어들이 매우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삼둥이 엄마인 현직 판사가 속칭 ‘이 따위’ 페이스북 논란을 빚으면서, 그러니까 송일국 매니저 논란을 “이따위로 자기들 좋을 대로만 편집”, “알바생에 불과하니 4대보험 따위 물론 내주지 않았다” 등의 글로 사태의 핵심이 아닌 자신의 ‘감정’만을 설명한 것은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다.
또 한편으로는, 국회 인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고쳐먹게 만들기도 했다. 국회 인턴 문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혹은 ‘비리’ ‘부정부패’ 등의 관점을 떠나 다른 각도로 보이게 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더 이상 ‘송일국 매니저 사건’이라는 고유한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은 자신의 아들을 보좌관으로 기용해 논란이 됐다. 사건의 당사자인 아들 이씨가 취재진들에게 자신을 ‘보좌관 문창준’이라고 소개하며 보좌관 행세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5일 보도였다. 새누리당 박윤옥 의원실 소속 4급 보좌관에 ‘문창준’이 등록돼 있지만 실제 인물이 아니고, 박 의원의 둘째 아들 이모 씨가 문씨 역할을 해왔다는 내용이다. 이에 박 의원은 “아들이 맞다. 과거 보좌관을 한 경력도 있고 아들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며 “문창준 보좌관이 지난 12월말에 그만뒀고 1월에 아들을 등록하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사례는 야당에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이 자신의 아들을 19대 국회 입성 후 현재까지 보좌진으로 채용했던 것으로 1월 26일 확인됐다. 백 의원은 2012년 국회에 들어오면서 재혼한 아내의 아들인 30대 후반 A씨를 7급 비서로 채용했다. A씨는 최근 5급 비서관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논란이 일자 백 의원은 이날 오후 A씨를 면직 처리했다.
백 의원은 2012년에도 육군사관학교 선배인 서종표 전 의원의 딸을 6급 비서로 채용해 ‘보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백 의원은 해명자료를 내고 “이번 일을 계기로 보좌진 채용 및 인사에 대한 검증을 하고 앞으로는 더욱 낮은 자세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 하겠다”며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길까. 그리고 정말 이 드러난 사례가 전부일까. 공직자의 검증과 인사청문회 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비리 중 큰 줄기는 ‘인사청탁’이다. 특히 자녀의 취직과 교수채용 등등 고용과 관련된 일들이 자꾸 수위를 높여간다. 고용이 없다는 뜻이다. 워낙 ‘자리’ 자체가 잘 생기지 않으며, 생겨도 ‘인맥’이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의원인 부모가 ‘인턴’이나 ‘보좌관’ 자리까지 ‘차명’으로 유용하는 현상은, 고용 자체가 드물어진 세상에서 고위급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된 것은 아닌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 |
 |
|
| ▲ 김원 문화평론가 |
이 와중에 배우 송일국이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인천의 한 지역매체는 내년 20대 총선에서 인천 연수구에 선거구가 늘어나면 송일국이 출마할 수 있다는 소문이 지역 정계를 중심으로 파다하게 퍼져 있다고 보도했다.
누군가가 세금을 사적인 일에 쓰고, 공영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슈퍼맨’으로 거듭나고, 드디어 현실 세계의 거물로 성장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고 예능보다 더 예능 같은 뉴스들을 접하며 혼란스럽다. TV 예능 프로그램이 늘 덧붙이는 구호가 떠오른다. “예능은 예능일 뿐”, 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