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이란 말 뒤에 사고원인 숨긴 국방부

“주민 안전보다 제 입장 먼저 생각한 국방부”

이미지출처 : 오주르디 블로그 '사람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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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8시 15분. GOP 소초원이 수류탄 1발을 터뜨리고 총기 10여발을 난사한 직후 총알 수십 발을 지참한 채 탈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저지른 임 병장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 추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주변에는 민가도 있었다.

주민 안전보다 제 입장 먼저 생각한 국방부

그런데도 군 당국은 사고 사실을 2시간 이상 숨겼다. 언론에 총기사고 사실을 알린 건 2시간 15분이 지난 밤 10시 30분.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탈영한 임 병장이 민가에 잠입해 주민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거나 또 다른 총기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인데도 2시간이 넘도록 쉬쉬했다는 얘기다.

즉각 언론에 알리고 행정관청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는데 우선을 둔 것이다.

비난이 일자 국방부는 대변인을 통해 “먼저 사고자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부대 부근 사람들에게 불안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한 뒤 언론에 알린 것”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해명이 아니라 거짓 변명이다. 위험에 놓인 건 사고자 가족이 아니라 주민들이었다. 먼저 주민 안전 조치를 취하면서 사고자 가족에게 연락을 하는 게 옳았다.

“주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지만 주민 안전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어떤 식으로 주민의 불안을 해소했다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여러 명의 동료를 죽이고 총기를 지참한 채 탈영한 병사가 날뛰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안심하라’는 말만 했다는 건가.

쉬쉬하더니 책임 회피 위해 거짓말까지

주민의 안전보다는 제 입장만 먼저 생각한 군 당국은 초동 대응에도 실패했다. 임 병장이 부대를 벗어나 십여 킬로미터나 도주할 때까지 생포하지 못했고, 추격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오인 사격으로 인해 부상자도 발생했다.

사고 사실을 두 시간 동안 숨겼던 군 당국은 임 병장의 유서 내용에 대해 쉬쉬하는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한다.

국방부는 ‘임 병장 유서’가 논란이 되자 24일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메모에는 가족과 유가족에 대해 사과한 내용이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저지른 일이 크나큰 일이라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범행 동기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임 병장의 유서에 소초원에 대한 불만과 군생활이 힘들다는 내용이 적혀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유서에) 범행동기를 입증할 만한 단서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없다”고 대답했다.

이미지출처 : YTN, 오주르디 블로그 '사람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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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표현”이라는 말 뒤에 사고원인 숨겼다

유서 내용을 더 공개해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있자 “나머지 부분은 자신의 심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얼버무렸다. 유서를 공개할 용의가 있느냐고 묻자 “검토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일반적으로 범인의 심경 토로는 범행 동기를 추정해볼 수 있는 단서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임 병장의 심경 토로를 “추상적 표현”이라는 말 뒤에 감춰버렸다. 중요한 단서는 “추상적 표현”이라는 말로 숨기면서 언저리 얘기만 늘어놓은 국방부. 끝내 거짓말까지 했다.

유서 내용이 일부가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유서에는 ‘선임과 후임에게 인정 못 받고 따돌림 당해 부대 생활이 힘들었다’는 내용과 자신을 하찮은 동물에 비유하면서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라며 심경을 토로한 내용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과 언론의 눈을 속이기도 했다. 자살을 시도한 임 병장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대역을 들것에 누이고 모포를 덮어 임 병장인 양 속인 것이다. 취재진이 많아 응급실 입구가 혼잡해 대역을 쓴 거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일 리 없다. 이런 식으로 눈속임을 해야 할 이유가 뭘까. 임 병장의 ‘입’이 취재진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꼼수를 부렸을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사과하고 임병장 유서 공개해야

국방부가 “추상적 표현”이라며 감춘 부분에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병영 내 집단 따돌림과 계급열외의 정황들이 숨겨져 있었다. 임 병장이 유서에 사고 원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추상적”이라는 말로 둘려댄 것이다.

임 병장 아버지의 절규에서도 단순한 총기사고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이) 9월에 재대하고 월에 휴가가 잡혀있으며 9월에 말년휴가 나온다. 그런 놈이 저런 일을 저지를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고 오열했다.

사고 처음부터 쉬쉬하더니 사고원인을 축소하고 변질시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직해야 할 군이 단수 높은 정치인처럼 꼼수를 부린다. 국방부는 국민 앞에 즉각 사과하고 유서를 공개해야 한다. (☞국민리포터 ‘오주르디’ 블로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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