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호텔 반대” 작은 출판사의 큰 울림

출판사 ‘여우고개’ 몇 달치 월세 털어 광고 “돈보다 시민 행복”

경복궁 옆 송현동(松峴洞) 전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터에 7성급 호텔 건립을 반대하는 신문 광고를 낸 작은 출판사가 있어 화제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발간하는 출판사 ‘여우고개’는 15일 <한겨레>에 “경복궁 옆에 7성급 호텔을 만든다고요? 여우고개 출판사는 반대합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여우고개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걸친 유적지이고 주변에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가 둘러싸여 있어 호텔을 지을 수 없는 땅”이라며 “대한항공은 이곳에 학교 세 개를 합친 크기의 넓은 숲은 베어내고 호텔을 지으려 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항공은 숙박 시설을 짓는 게 아니라 숙박 시설이 있는 복합 문화시설을 세우는 것이라 합니다. 그럼 왜 호텔이어야 하나요”고 반문하며 “송현동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선 7성급 호텔보다 박물관과 공원이 더 필요하지 않나요?”고 지적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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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은 조선왕조 시기 외척과 세도가들이 살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식산은행이, 해방 후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가 있던 곳이다. 2008년 삼성이 1,400억 원에 매입해 리움미술관과 같은 ‘복합 문화 시설’을 지으려고 했지만 포기했고, 이를 대한항공이 속한 한진그룹이 매입했다.

여우고개는 “이 땅은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은 발도 딛지 못한 굴곡의 땅”이라며 “한 기업의 이익이 아닌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해 결단을 내린다면, 그 아름다운 공간을 마련한 영예는 한진그룹의 몫이 될 것 입니다”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송현동 숲을 다시 살려낸다면, VVIP만을 위한 화려한 건물과 비싼 정원수 대신 소박하지만 무성한 숲이 있는 공원이 생깁니다”라며 “소위 귀빈들이 쓰고 가는 돈보다 돈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시민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온 국민에게 남는 장사가 아닐까요?”라고 호소했다.

이어 “서울시와 정부는 이 땅을 매입해 환경 친화적이면서도 문화를 지키는 공원과 박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며 “숲이 살아나면 특정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국민과 후속에게 혜택이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출판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께서도 몇 년 후면 퇴임하십니다. 또 머잖아 할머니도 되시고요. 퇴임 후에 단풍이 곱게 물든 어느 가을날, 송현동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박근혜 할머니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정겨울까요?”라며 “이런 전직 대통령을 마음속에 그려봅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여우고개는 해당 광고를 몇 달치 월세를 털어 게재해 훈훈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주고 있다. 출판사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여우고개를 응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방에 살고 있다는 한 시민은 “뉴스에서 학교 옆에 호텔을 짓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어도 장소가 어디인지는 막연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저게 말이 되나? 하고 지나갔는데 오늘 광고를 보니 정말 화가 납니다”라며 “여우고개의 소원이 우리 서민모두의 소망이라 생각합니다”라며 응원했다.

류춘희 씨는 “생소한 출판사에서 이렇게 멋진 광고를 내주시니 너무 고맙고 뿌듯합니다”며 “기업의 입장에서 경제 논리로만 접근 하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많이 생기겠지요. 그러나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멋진 도전장을 내미는 사회적인 정의가 있어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행복한건지도 모릅니다. 여우고개 파이팅!”이라며 지지했다.

또 박길수 씨는 “땅에 얽힌 역사와 우거진 숲, 그 숲을 모두 훼손하고 7성급호텔을 짓겠다는 대기업, 그것을 지켜보기 안타까워 몇 달치 월세를 털어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는 작은 출판사. 공분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면서 “그보다 여우고개 출판사의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과 진정성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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