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밀어붙이나?

전우용 “나쁜 건축행위, 더한 역사왜곡 불러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복궁 옆 종로구 송현동 옛 미국대사관 숙소부지에 대한항공이 추진 중인 ‘7성급 호텔’ 허용 의지를 밝히자 여당은 물론 교육부까지 나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에 맞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뷰스앤뉴스> 등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의료, 교육, 금융, 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힌 뒤, 특히 “관광진흥법안이 통과되면 약 2조원 규모의 투자와 4만 7천여개의 고용이 창출된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들 법안들이 꼭 통과되도록 협조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뉴스y
ⓒ 뉴스y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학교 인근에 들어서길 바라는 호텔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송현동 옛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는 우여곡절이 많은 땅이다. 지난 2002년 삼성이 미술관을 짓기 위해 사들였지만 각종 규제로 이를 포기했고, 2008년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이 삼성에서 매입한 뒤, 이곳에 두바이와 같은 세계 최고급 7성급 관광호텔을 짓겠다며 집요하게 로비를 벌여왔다.

하지만 이 부지 바로 옆에는 풍문여고와 덕성여중·여고가 밀집해 있어 현행법상 불가능하며 실제로 서울중부교육청은 대한항공의 요청을 거부했다. 대한항공은 이후 제기한 행정심판에서도 패소했다.

현행법상 호텔 건립이 불가능하자, 대한항공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 호텔 건립을 관철하려 했고 그 산물이 ‘관광진흥법안’이다. 이 법안이 ‘대한항공법’으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관광진흥법안은 MB정권 말기인 지난해 10월, 정부는 유흥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은 교육청 승인 없이 건립할 수 있도록 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며, 박 대통령은 이를 승계해 이번에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당연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교육부도 자체 훈령을 통해 박 대통령의 경복궁 호텔 건립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부가 추진 중인 상위법인 법률이나 시행령과도 맞지 않아 ‘맞춤 입법’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교육부는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을 때 거쳐야 하는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정화위원회)의 심의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숙박업소 등에 관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운영규정(가칭)’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운영규정은 시행령과 달리 국무회의 의결도 필요 없는 훈령이다.

운영규정의 핵심 내용은 숙박업소를 설치하려는 업체가 정화위원회에 참석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또 정화위원회가 호텔 설치 금지 결론을 내렸을 때 금지 사유를 업체 쪽에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 9월25일 정부의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관광호텔과 관련한 투자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한 데 따른 (후속) 조처”라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업체에 정화위원회 참석 권한을 준 것은 학교보건법은 물론 관련 시행령과도 어긋난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근처에 숙박업소를 지으려면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정화위원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은 정화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대상은 해당 구역의 교장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서울시와 야당, 교육계, 문화계 등 각계 반발이 거세다.

최종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북촌지구단위계획’에 들어 있는 해당 용지에는 공익적 시설이 들어서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문화재위원인 역사학자 전우용 씨(@histopian)는 트위터에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인수해서 만든 사택 단지는 해방 후 미군정이 몰수해서 미국 대사관 직원 사택으로 전용했다”며 “미국이 그 땅을 내놓자 몇 해 전부터 대한항공이 초고층 호텔을 짓겠다고 로비를 해 왔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이어 “오래된 건물 몇 개 가졌다고 역사도시 자격을 갖는 게 아니”라며 “인공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 이루어진 ‘역사 경관’이 보존되어야 역사도시다. 그 자리에 초고층 관광호텔이 들어서면, 삼청동, 재동, 계동, 안국동, 인사동 등 북촌 전체에 영향을 미쳐, ‘역사 도시’ 서울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나쁜 교과서보다도 이런 건축 행위가 역사를 더 많이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부와 여당이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게 관광진흥법을 개정하려 한다며 “관광수입도 좋지만, 그걸 얻으려 얼마 남지 않은 ‘역사경관’까지 망쳐야 하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신이 빈곤하면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씨는 “굳이 호텔을 지을 양이면, 2층 이하의 한옥 단지 형식으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를 ‘전통경관 지구’로 만들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될 수도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고발뉴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