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동북아시아 안정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낮 기습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일본 현직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는 2006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후 7년 4개월만의 일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쿄 구단시타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총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직에 다시 오르기 전부터 “1차 아베 내각(2006년9월~2007년9월)의 총리 재임 때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순국 영령들에게 존경과 숭배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뜻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에 우리 정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6일 오후 발표한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그간 이웃 나라들과 국제 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이어 “아베 총리가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서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협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라며 “아베 총리가 소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제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하나, 과연 이러한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평화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진정으로 국제 평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과거 역사를 부정하고 침략을 미화하는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역사를 직시하면서 일본 군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겪은 인근 국가와 그 국민들에게 철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신뢰부터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여야 정치권 역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을 ‘망동’으로 규정하고 일제히 규탄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논평에서 “부끄러운 과거사를 참회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노력을 보이기는커녕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히 규탄하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아베 총리의 몰역사적 행보에 대해 규탄하고 한일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 질서를 깨뜨리는 망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1970년 폴란드인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빌리 브란트의 역사 인식과 진정성을 일본이 본받길 촉구한다”며 “2013년 아베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를 전격 참배함으로써 ‘일어선 것은 한 사람이지만 무릎을 꿇은 것은 일본 전체였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도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역사정의와 인류양식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행위로 강력한 분노를 표시한다”고 성토했다.
중국 외교부는 주중 일본대사에게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항의하고 주일 중국대사관도 일본 외무성에 항의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나섰다. 일본 주재 미국 대사관은 성명을 내고 “이웃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을 취한 것에 미국 정부는 실망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아베가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일본의 평화에 대한 결의를 재확인한 표현을 쓴 것에 주목한다”며 “미국은 일본과 그 이웃국가들이 과거의 민감한 이슈를 건설적으로 다룰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식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평가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주변국들의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신사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정권 출범 1년을 맞아 오늘 참배한 것은 전쟁의 참혹함으로 고통을 겪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결의와 정권 1년의 발자취를 보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국, 한국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 만큼도 없다. 직접 설명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