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前 외교 “역사인식 부재.. 獨정부에 나치 잔재하는 것과 같아”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은 어리석은 나라”라고 발언을 한 지 얼마 안 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 표현하며, 한국과 중국의 공감 속에 추진되고 있는 안 의사 표지석 설치 사업을 문제 삼았다.
<한겨레> 등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방한한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안중근 의사 비석 설치 작업이 중국에서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사의를 표현한 것과 관련해 “우리나라(일본)는 한국 정부에 안중근은 범죄자라고 지금까지도 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일-한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스가 장관의 발언이 개인 입장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라는 점이다.
특히 조선 침략에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안 의사를 ‘범죄자’로 표현하는 것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한·일 간 근본적인 인식차를 드러낸 것이어서 향후 양국 사이에 큰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 의사는 거사 뒤 진행된 재판 과정과 미완성 원고 <동양평화론>을 통해 이토를 처단한 것은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는 정치적인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런 안 의사를 단순한 범죄자로 부르는 것은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반성한다는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나라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범죄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 시대에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일본이 당시 주변국에 어떤 일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스가 관방장관과 같은 발언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안 의사가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항일 의사”라며 안 의사 표지석 설치 관련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훙 대변인은 이어 “중국과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과 침략의 피해자”라며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일본은 아시아 주변국의 요구와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역사적 범행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스가 장관은 오후 늦게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은 ‘과잉반응’”이라며 “기존 우리나라의 (공식) 견해를 담담히 밝혔을 뿐”이라고 맞받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비단 정부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강경 보수지인 <산케이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하면서 사실에 맞지 않는 악의적 질문으로 특정 답변을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케이신문>은 계열 방송사인 후지뉴스네트워크(FNN)와 함께 지난 16~17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담화에는 일본 관헌이 여성을 강제로 위안부로 만들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공적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응답자 55.0%가 고노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27.5%로 나타났다. 위안부 동원이 강제적임을 뒷받침하는 공적인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해 응답자에게 전달한 뒤 답변을 유도한 셈이다.
그 동안 <산케이신문>은 일본군이 1944년 2월부터 약 2개월간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자바섬 스마랑 근교에 억류해 위안부로 삼은 사건을 단죄하기 위해 전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서 열린 BC급 전범 군사재판의 공소장과 판결문 등 위안부 강제동원을 입증하는 공적인 문서를 외면해 왔다. 이는 바타비아 재판기록은 강제연행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아니라는 아베 신조 내각의 입장과 같다.
한편, 연이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망언에 대해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 배경으로 “일본의 역사인식 부재”를 꼬집으며 “우리(일본)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는 인식 외에는 다른 인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송 전 장관은 “일본이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2차 대전 전의 일본과 전후의 일본이 단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전쟁을 일으킨 기본적인 책임은 천황한테 있는데 그 천황제가 전후에도 유지됐다. 이는 독일에서 나치의 잔재가 독일 정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송 전 장관은 안중근 의사 표지석 설치 비판 등 일본 정부의 강경 반응에 대해서도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위축된 국내 정치 분위기를 아베 정권 들어 극복하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송 전 장관은 “그 동안 일본은 국내 경제, 사회적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국제정치적으로는 중국이 급부상 했다. 또한 때마침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미국이 일본의 돈과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며 “일본이 강하게 나오는 데는 미국이 우리 일본 뒤에 서 주면 한국 정도는 문제 없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