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번개로 열린 26차 촛불집회.."지금 가장 안녕한 곳은 청와대"
꺼져가던 촛불이 정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에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로 겨울 한파 속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개입 및 박근혜 정부의 수사방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이하 국정원 시국회의)와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개최한 ‘1221 대자보번개 촛불집회’가 2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5천여 명(주최 추산, 경찰 추산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국정원 시국회의 기조발언자로 나선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는 “오늘 저녁 시민들이 민주노총에서 철도를 지켜달라”며 “내일은 의료를, 모레는 밀양과 쌍용차를 탄압받는 진보정당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윤 대표는 이어 “지금 가장 안녕한 곳은 청와대 뿐”이라며 “종북공세를 물리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국민의 힘으로 되찾아 청와대를 안녕치 못하게 하고 국민들이 안녕하게 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철도민영화, 비정규직, 밀양 송전탑, 정권에 장악된 언론 등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시민들이 직접 대자보에 적어오는 형식으로, 자신들이 '왜 안녕하지 못한 지' 쏟아냈다.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직접 써온 대자보를 보이며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기 때문에 철도파업이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 밝혔다.
신 위원장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이 시대의 안부를 묻는 유행이 됐듯이, 우리들의 분노가 이 세상을 바로잡을 때까지 힘있게 투쟁하자”고 외쳤다.
한국철도공사 수서발 고속철도 운영준비부서에서 근무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참가자는 “수서고속철도 주식회사가 5천억의 연간 손실이 발생하고 순이익은 천 억 원이나 감소한다. 코레일에 손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박근혜 정부는 4년 후 임기를 마치지만 철도는 100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정부가 다음 정부, 그 다음 정부에서도 민영화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다”고 밝혔다.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는 안인숙 씨는 흰 소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안 씨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양산을 중단하고, 영어회화 전문강사의 집단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며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도 같다. 박근혜 정부는 이같은 살인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밀양 현장에서 올라온 한 주민은 “경찰은 유한숙 어르신 분향소에 천막도 치지 못 하게하고, 동네 어른이 수면제를 드셨으나 경찰이 119도 안 부르고 현장진입도 막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정의가 반드시 이기는 것만 봤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한전과 정부가 어르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죽어야 이 일이 해결될지 암담하고 분하다. 모두가 안녕하도록 많이 도와달라”고 외쳤다.
언론인들도 무대에 올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우리가 쓰는 기사, 만드는 프로그램, 전하는 뉴스는 반쪽짜리”라며 “못 살겠다는 국민들의 신음과 못 참겠다는 유권자의 배신감을, 시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 한다”고 반성했다.
이어 “밀양에서, 강정에서, 평택, 영도, 용산에서 벌어진 억울한 죽음들과 무자비한 탄압은 대통령의 외국어 연설에 묻히고 만다”고 지적하며 “못 참겠다고 외치고, 바로 잡자며 파업도 하고, 잡혀도 가고, 해고도 당했다. 적어도 민주주의 파괴의 공범은 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도 했다. 하지만 이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그래서 펜과 카메라 대신 매직을 잡고, 기사 대신 반성문과 같은 이 대자보를 쓴다. 국민들의 눈과 귀, 입이라면서 국민들이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도록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외침도 이어졌다. 고려대 학생 최하영(한국사학과) 씨는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춰서 안녕하지 못하다”며 “학생이 학업에 열중해야 하기에 정치참여를 막는다면 직장인은 일을 해야 해서 정치참여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치는 정치인만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최근 교육부가 전국 교육청에 고등학교의 대자보를 금지하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을 비판한 것이다.
같은 학교의 강훈구씨는 “옥탑방이 추워 안녕하지 못하다”며 “등록금이 1년에 1000만원에 달하고, 한 달 방값으로 40만원, 생활비로 30만원이 필요하다. 이 추운 겨울 가스비가 무서워 학생회실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오늘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이게 과연 우리들의 잘못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촛불집회가 열리기 전 같은 장소에서 전국철도노조의 결의대회가 열렸다. 철도노조원 3천여 명이 모인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박근혜 정부는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노조원들은 “정부는 코레일의 경영을 효율화하기 위해 민영화의 수순인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하고 있지만, 경영 실패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철도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