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오류만 201건…‘인터넷 긁어오기’ 등 ‘오류투성’
역사학자들이 역사왜곡 논란을 빚고 있는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사 교과서’(교학사)를 검증한 결과 무려 298건에 달하는 오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이후의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전체의 3분의 2를 넘는 201건의 오류가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는 10일 서울 남대문로 대우재단빌딩에서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500~600건에 달하는 문제점 가운데 다른 교과서에서도 있을 수 있는 오류들은 제외했다”며 밝힌 문제점만 298건에 이르렀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부분에서 사실 왜곡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해당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이 많았다. 역사연구회의 검증결과에 따르면 교과서는 “연합국은 카이로 선언(1943)으로 일본에게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였다”(238쪽)고 했는데, ‘카이로 선언’은 ‘포츠담 선언’을 잘못 알고 쓴 부분이다.
“김일성은 (중략) 1950년 6월25일 전면적으로 남한을 침공하였다. 애치슨 라인 선언으로 인하여 미군이 철수하였으므로 전격전으로 남한을 접수하기 좋은 때라고 판단하였다”(312쪽)는 부분도 틀렸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애치슨 선언은 1950년 1월에 발표했고, 미군은 그 전에 철수했다”며 “그런데 이 교과서는 미군이 철수했기 때문에 전쟁이 났다는 이야기를 상상해서 집어넣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사이트의 글을 검증 없이 옮겨온 사례도 지적됐다. 교과서의 “일제는 1912년 토지조사령에 이어 조선민사령·부동산등기령 등을 반포하여 토지 조사 사업을 추진하였다”(243쪽)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조선민사령과 부동산등기령은 토지조사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시행된 법령이 아니다”며 “네이버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토지제도’ 항목의 오류까지도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화장품, 박가분’ 관련 글(245쪽)에 대해서도 인터넷 위키피디아의 ‘박가분’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썼고, ‘고종 독살설’(252쪽)도 위키피디아에 나온 내용과 상당히 유사해 표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5·16 군사쿠데타 등을 미화하는 과정에도 오류가 잇따랐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정체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1919.9.)”(256쪽)는 부분은 부정확하게 서술됐고,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254쪽)는 대목과는 서로 부딪힌다.
연구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와 관련된 서술(324~325쪽)에도 유신체제를 이야기 하며 당연히 들어가야 할 비민주성과 폭력성 등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같은 역사학자들의 잇따른 지적에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측은 검정심의를 통과한 8종 고교 한국사 교과서 중 교학사 교과서만 문제 삼는 것은 ‘마녀사냥’ 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