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종북사냥’…“다수 불만의 해일 막을 수 없을 것”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이석기 의원 사태’와 관련, “국가정보원 국내 파트 개혁 이야기가 나올 때쯤 되면 빠짐없이 나오는 카드는 새로운 ‘간첩단’의 발견”이라며 ‘종북 사냥’의 속내에 대해 진단했다.
박 교수는 4일 <한겨레>에 “‘종북 사냥’의 속셈은?”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현 시점에서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에 관련한 ‘사건’을 벌이는 지에 대해 근인과 근본적 원인으로 나누어 진단하고, “국정원의 선거 개입이라는 사실은 박근혜 정권의 명분 자체를 의문에 빠뜨린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삶에 대한 각종 불만이 쌓이고, 정권의 명분이 약화되고, 거기에다가 국정원 국내 파트 개혁이야기가 나올 때쯤 되면 빠짐없이 나오는 카드가 새로운 ‘간첩단’의 발견이라며 하도 익숙해진 순환이다 보니 거의 기시감이 들 정도”라고 근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종북 사냥’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도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높지만 아직까지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신뢰하며 제대로 된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는 “과연 오늘과 같이 민중이 체제에 포섭되는 상태는 영구적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경제 성장률의 저조한 수준과 자영업자들의 부채 부담, 대졸자들의 취업 실패 등을 언급하며 “미래에 하등의 희망을 볼 수 없는 수백만명에 이르는 포괄적 의미의 ‘사회 주변인’들은 그들에게 더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하는 체제를 과연 언제까지 신뢰할 것인가? 그들에게 언젠가 계급적 각성의 순간이 오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체제가 장기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며 “그래서 일찌감치 ‘종북 사냥’을 대대적으로 벌여 체제에 대한 모든 반대에 미리미리 ‘종북’과 같은 색깔을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아무리 좌파 민족주의자들을 본보기 삼아 두들긴다고 해도 언젠가 이 나라를 덮어버릴 주변화 된 다수의 불만의 해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박 교수는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 “나에게 내란음모는 한국사 교과서에서 가장 비극적인 꼭지들의 이름”이라며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재판과 1975년 ‘인혁당 멤버’ 8명의 사건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와서 인혁당도 실체가 없었고 ‘내란음모’의 흔적도 없었다는 사실 등이 다 밝혀졌지만 그 당시 사형을 내린 대법원장 민복기(1912~2007)나 조작극의 주범인 중앙정보부 부장 신직수(1927~2001)등은 지금도 각각 그들이 속했던 조직 속에서 ‘문제가 있긴 있어도 근본적으로 존경스러운 선배’로 추앙받고 있지 않은가?”라고 개탄했다.
그는 “국가 범죄가 저질러져도 국가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범죄자가 제대로 단죄 받고 처벌되는 법이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이 나라에서 언제든 또다시 ‘내란음모’ 명분으로 인권유린이 저질러질 것이 쉽게 예상돼 불안과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해서도 “최근의 ‘왕재산 간첩단’까지 알고 보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직’들을 하도 잘 만들어 내는 곳이 국정원인지라 그러한 논의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선뜻 신뢰하기 어렵지만, 만약 통합진보당 일부 당원 사이에 이와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오갔다면 나는 그저 그분들의 상식을 의심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는 이 의원의 사태가 ‘내란예비음모’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수에 속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형법 87조의 ‘내란’의 정의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인데 대한민국 일부 영토를 떼어서 불법적 정권을 만들거나(국토 참절), 국헌을 문란케 할 만큼 전국적인 폭동을 일으키려면 그중의 상당수가 무기도 다룰 줄 모르는 약 130명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는가?”라며 “‘간첩 단체’에 대한 소설 격의 이야기를 제조하는 것이 국정원의 특기(?)인 셈인데 이 정도면 ‘비(非)과학 판타지 소설’로 봐야 할 듯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