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직무 독립성 확보 역부족”…‘정치적 외압설’ 시사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총체적 부실임을 지적한 조사결과를 내놓은 양건 감사원장이 23일 임기를 1년 7개월이나 남겨놓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갑작스런 사퇴에 청와대와의 ‘인사갈등설’과 정치적 외압설 등 파문이 일며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임기 보장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양건 감사원장의 사표 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양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지 사흘만인 26일 이임식을 거쳐 자리에서 물러난다.
청와대도 양 원장의 사퇴와 관련, 묵묵부답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시기에서 또 다시 ‘인사 논란’에 휘말리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장 후임 임명에도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그 동안 헌법 준수와 법치 확립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헌법기관장에 대해 약속을 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부담이 발목을 잡는 데 한 몫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민주당은 양 원장의 임기 보장 약속을 박 대통령이 깼다며 날선 비난을 던졌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양 원장을) 이이제이(以夷制夷)하고 토사구팽(兎死狗烹)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 대통령이 헌법을 어기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과 청와대는 ‘양건 원장의 판단에 따른 용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동안 청와대의 도를 넘은 논공행상식 인사개입을 양건 감사원장이 거부하자 교체로 이어졌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청와대가 공석인 감사위원으로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에 참여한 장훈 교수를 양건 원장이 제청해 주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고, 양건 원장과 감사원 내부의 친박 성향 고위직간의 내부 갈등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국정원 정치개입과 대선개입으로 국가기관의 국기문란이 도를 넘은 상황에서 헌법기관인 감사원까지 논공행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정치적인 봉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야당 법사위위원들은 감사원장 교체의 진실을 밝혀서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고 친박·친이 세력의 야합으로 빚어진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 4대강 사업의 진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도 “누가 봐도 감사원이 권력 눈치 보기 감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번 감사원장의 전격적인 사퇴배경 역시 권력암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의혹이 짙다”며 “무엇보다도 주요 권력기관을 떡 주무르듯 쥐락펴락 하려하는 현 정부여당의 태도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수사결과를 여당이 전면 부인하고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 때문에 감사원장이 사퇴했다면 이는 심각한 사태”라며 “민주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의혹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양 원장은 26일 이임식에서 “재임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며 “현실적 여건을 구실로 독립성을 저버린다면 감사원의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언급해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